전통 지하드에서 지하드운동까지

 

 

 

 

 

 

 

 

 

전통 지하드는 이슬람 제국을 비롯하여, 모든 무슬림 지도자의 권위로 칼리프가 상징적으로 이끌던 전쟁이었다. 칼리프는 국가의 수장이었고 그가 이끄는 성전은 전술과 정당한 목표에16 따른 규정에 종속되었다. 지하드운동은 전통 지하드를 재해석한 것으로 이슬람주의가 이슬람교를 정치적으로 변조한 것과 이치가 같다. 이는 약탈을 일삼는 독불장군의 테러가 아니라 다양한 “비정규전” 을 일컫는다.17 이처럼 이례적인 양상의 성전은 예전에 수용된 규정이나 목표의 제약에 아랑곳하지 않는 비국가 주동세력이 감행하고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를 둘러싼 이슬람교의 분열 또한 지하드운동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 같은 신개념 전쟁에 관한 연구는 마르틴 반 크레벨트의 「저강도전쟁low intensitywar」과 「제3의 전쟁war of the third kind」에서 입증한 칼레비 홀스티의 이론을 참고하도록 하겠다. 지하드운동의 전쟁은 박해자에 맞선 피박해자의 정당한 전쟁의 성격을 띤다. 나치와 공산주의자들도 이슬람주의자들의 이념의 전쟁(하릅 알아프카르)과 흡사한 방법으로 폭력을 선전에 이용했다.
지하드운동 전쟁은, 헤들리 불이 한때 “서방세계에 대한 반란” 이라고 말한 점을 분명하게 역설한다. 즉 서방세계의 패권에 대항할 뿐 아니라 문화적 차원도 감안하여 국제 시스템에 의존하는 베스트팔렌식 세속주의를 비롯한, “서양의 가치관”도 배격한다는 것이다. 1648년 두 번 체결된 베스트팔렌 평화협정은 국가의 주권을 인정하고 (크리스천) 종교의 자유를 선포하며 다른 국가의 종교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의한 것인데, 이를 세속주의라는 점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강력히 거부한다. 그들은 신앙과 문화적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정치화된 이데올로기로서 종교를 세계정치에 다시 주입하려고 했다.
이 같은 반란은 비국가 주동세력의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지하디스트 이슬람주의자들은 범죄자가 아니라 자칭 전사들이며, 폭력을 지향하는 점을 두고는 마크 위르겐스마이어가 지하드운동 관련 서적에 붙인 제목처럼 “종교와 테러”라고 간주한다. 이슬람주의는 종교화된 정치인 반면, 지하드운동은 종교화된 전쟁을 일컫는다. 전통적인 “종교 전쟁”이나 종교를 둘러싼 유럽식 전쟁의 의미가 아니라 종교의 귀환이라는 의미, 즉 종교적 맥락에서 보는 전쟁의 선포와 정당성에서 이를 뜻하는 것이다. 지하드운동은 “글로벌 지하드” 를 가리키는 거룩한 전쟁으로 폭력은 하나의 구성요소에 불과하다. 예컨대, 헤즈볼라는 2006년 7, 8월에 치른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거룩한 승리” 로 규정했는데 헤즈볼라의 지하디스트는 저명한 전쟁학자가 주요 국제안보회의에서 지적한 바와는 달리, “범죄자”가 아니라 죄의 세상과 서양의 악습을 정화함으로써 의무태만을 준행하는 진정한 신앙인으로서 폭력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규정을 존중하지 않는 성향—예컨대, 헤즈볼라는 레바논 남부 사람들을 방패로 삼아 숱한 민간인이 사망하고 말았다— 은 신성한 전쟁의 위상에서 태동한 것이다. 이처럼 중차대한 상황에 국제회의가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또 다른 아젠다에는 지하디스트 이슬람주의에 충성하는 군인을 징집하기 위해 젊은 무슬림에게 독트린을 심어주고 급진주의로 세뇌시키는 것도 있는데, 이는 전체주의 조직의 공통적 특징이다. 이슬람 제국의 정의로운 전쟁(푸투하트)에 대한 집단기억과 지하드를 방어로 보는 전통적인 입장은 이슬람주의 조직이 “포위된 이슬람교” 라는 명목으로 재현해냈다. 때문에 방어의 일환으로 벌이는 비정규전은 세계 어디에서나 정당성이 인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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