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대서사시: 아리아인의 침략

 

 

 

 

 

 

 

아리아인은 머리카락 한 오라기까지 불태워버리는 잔인한 파괴자였다. 비록 그들이 세정의식・요가・모신 숭배사상 같은 인더스 문명의 여러 요소들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들의 정복상이 얼마나 모골이 송연했는지는 『리그 베다』에서 불의 신 아그니를 찬미하는 대목에 나타나 있다.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한 채, 자신들이 가진 것을 모두 뒤로한 채 도망치기 바빴다. 바이슈바나라Vaisvanara
(아그니의 다른 명칭)가 모든 것을 불태워 파괴된 도시 가운데서 밝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아인이 인더스 계곡을 침략한 건 기원전 1750~1500년경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리그 베다』라 불리는 브라만교의 찬가 경전이 집대성된 것은 그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다. 그동안 민족 간의 관계 변화가 이 경전의 내용에 영향을 미쳤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스유스Dasyus는 아리아인의 침략 이전에 원래 인도 북서부에 살던 드라비다인Dravidian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리그 베다』에서는 이 다스유스란 단어가 인드라 신과 끝나지 않는 싸움을 벌여야 하는 아수라Asuras 일족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아리아인은 다스유스를 ‘노예’를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했다. 이런 용어의 변천은 아리아인이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로부터 인더스 계곡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언어학자들의 연구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영국의 인도 통치 시대인 1786년 영국인 판사였던 윌리엄 존스 경은 그리스어・라틴어・산스크리트어・독일어・켈트어 간의 유사성을 밝혀냈다. 그는 캘커타에서 벵골 아시아협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1785년에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한 직원이 『마하바라타』의 일부를 번역하기도 했다. 『마하바라타』는 『리그 베다』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부족 바라타족의 전쟁에 관한 대서사시로 세계적으로 손꼽힐 정도의 엄청난 분량을 자랑한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이 대서사시는 아리아인이 인더스 계곡에서 갠지스 강유역까지 뻗어나간 전쟁사를 찬미하고 있다. 윌리엄 존스 경의 연구덕에 초원지대 언저리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최초의 인도어-유럽어 사용자들, 그 중에서도 특히 영국인과 페르시아인, 그리고 인도 북서부를 침략한 아리아인 침략자의 선조가 어떤 식으로 중국 북부에서부터 헝가리 평원의 언어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조직적인 연구가 가능해졌다. 당시 러시아 남부는 인도어-유럽어 확산에 가장 적합한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러시아 남부의 유목민은 경작하는 땅에 발이 묶여 있었던 서아시아・남아시아・동아시아의 여러 농경민과는 달랐다. 말 위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한 그들은 엄청난 기동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엔 이 기운찬 가축에 마구를 채워 짐마차나 전투용 마차를 끌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갈이라는 획기적인 기구의 발명으로 기수가 말을 자신의 의도대로 몰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등자가 발명된 건 한참 후의 일이다. 그때까지 재블린javelin(촉과 자루, 끈으로 감은 손잡이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 가벼운 창)을 사용하는 창병이나 궁수는 여전히 충돌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에 올라야 했다. 기원전 1000년경에는 ‘청동재갈’이 발명되어 전차부대가 기갑부대로 대체되는 변화도 일어났다. 그러나 거대한 장창을 쓰는 창기병이 등장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였다. 이를 위해서는 등자와 안장이 말에 장착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아시아에서 발명된 등자와 안장 덕분에 말에 오르내리는 것과 말을 모는 것이 한층 수월해져서, 말을 안정적으로 탈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이 효과적인 안장 덕에 날개 달린 창winged spear과 여러 보호 장구들을 이미 사용하고 있던 게르만 중에서도 서게르만에 속하는 다양한 부족들의 연합인 프랑크족의 기마병들은 중무장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전 유럽을 호령한 기사들의 탄생이 목전으로 다가온 것이다. 십자군원정 당시 중무장한 프랑크족 기마병들로 구성된 기갑부대가 중세 서아시아 민족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건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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