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 공리주의와 규칙 공리주의의 형식상 차이

행위 공리주의와 규칙 공리주의의 형식상 차이는 이것들이 각기 옳은 행위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서 발생한다. 행위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상황에서의 행위가 다른 행위보다 더 큰 효용을 가져올 때, 그리고 오직 그러할 때에만 그 행위가 옳은 행위다. 이와 달리, 규칙 공리주의에서는 하나의 규칙 아래 놓여 있으면서 그 규칙을 따르는 행위가 다른 규칙을 따를 때보다 더 큰 효용을 가져올 때, 그리고 오직 그러할 때에만 그 행위가 옳은 행위다. 행위 공리주의와 규칙 공리주의의 차이를 덜 형식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려면, 앞서 공리주의의 문제를 지적할 때 나온 사례들을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예컨대 우리는 앞서, 행위 공리주의의 절차에 따라 각 행위의 효용을 계산하고 비교하는 행위자는 친구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으므로, 또한 이러
한 행위자들로 채워진 사회는 약속이 잘 지켜지는 사회보다 덜 행복한사회이므로, 공리주의는 본래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규칙 공리주의자들은 바로 이런 행위 공리주의의 약점을 끌어다가 오히려 자신들의 논리를 강화하는 데 쓴다. 규칙 공리주의가 내세우는 논리는 두 개의 세상, 곧 약속이 지켜지는 세상과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세상을 비교하는 데서 출발한다. 전자가 더 행복한 세상인 것으로 판명되면, ‘약속을 지키라’는 규칙을 채택하여 사람들이 이 규칙에 따르도록 한다. 가족관계나 우정 같은 문제에서도 같은 방법이 적용된다. 이런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세상이 그렇지 못한 세상보다 더 행복한 것으로 판명되면, ‘친구를 위하라’는 규칙을 채택하여 모든 사람이 따르도록 한다. 친구들을 위하고, 약속을 지키는 것 같은 행위는 규칙 공리주의에 비추어 옳은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규칙 공리주의는 본래 공리주의가 안고 있던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자부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규칙 공리주의는 끝이 전혀 보이지 않던 계산의 터널에서 공리주의자들을 구해내고, 공리주의를 궁극의 목표에서 빗나가게 한다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한다. 공리주의는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비평 앞에서 규칙 공리주의자들이 진실로 주장하려 한 것은 앞서 행위 공리주의를 논하는 가운데 전제된 가장 적절하다는 규칙, 곧 ‘언제나 나의 행위가 가져올 결과를 평가하고 가장 적절하게 행위하라’는 규칙을 따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점이다. 요컨대, 행위 공리주의가 내세우는 규칙을 따르더라도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차라리 의무론의 지시와 관습적 도덕의 요구에 가까운 규칙들을 따를 때에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규칙 공리주의의 또 다른 이점은 공리주의가 비도덕적인 행위를 조장한다는 인상을 털어낸다는 점이다. 죄 없는 사람을 벌주던 사례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앞서 죄 없는 사람을 벌주는 것이 죄 있는 사람을 벌주는 것과 똑같은 혜택(예컨대, 억제의 효용)을 가져온다고 생각될 경우, 공리주의는 언제라도 서슴없이 죄 없는 사람을 벌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관들은 사건에 따라 재량으로 판결을 내릴 것이다. 그런데 규칙 공리주의의 시각에서 이 일을 돌이켜보며 모든 개인이 관행이나 제도에 바탕을 둔 다양한 규칙에 따라 행위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다시 두 개의 세상이 있다고 가정하자. 하나는 법관이 전체의 복지를 위해 이롭다고 판단할 경우, 재량에 따라 죄 없는 사람이라도 벌을 줄 수 있는 ‘목적론적 처벌’15 제도가 시행되는 세상이다. 또 하나는 우리가 이미
익숙해진 형벌제도를 시행하는 세상으로, 오직 죄 있는 사람만이 규칙에 따라 벌을 받는다. 행복의 총량이 더 큰 세상은 어느 쪽일까? 존 롤스는 논문 「규칙의 두 가지 개념Two Concepts of Rules」에서 목적주의에 입각하고 있으며, 의무론과는 반대의 견해다.
부분적으로는 법관들이 해명할 필요가 없는 권위, 따라서 쉽사리 남용될 수 있는 권위를 행사하여 죄 없는 사람이라도 자의와 재량에 따라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부분적으로는 시민이 혹시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형을 받은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할지, 그에게 저주를 퍼부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불안에 떨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롤스는 오직 죄 있는 사람만을 벌주는 세상이 더 행복한 세상이라 주장했다. 인간이 붙들고 살아야 할 규칙은 ‘오직 죄 있는 사람만을 벌주라’는 규칙이다. 모든 대안 가운데 (또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대안 가운데) 이 규칙만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칙 공리주의는 ‘원칙 없는 공리주의’를 손가락질하는 의무론자들의 날 선 비평에서 독을 빼냈다. 규칙 공리주의는 원칙 있는 도덕을 제시했고, 그 원칙 가운데는 직관적으로 찬성할 만한 것이 많다. 이렇듯 규칙 공리주의는 우리의 지지를 받을 만한 많은 원칙들을 포함하면서도, 의무론을 따르는 사람들이 곧잘 쓰는 ‘마땅히 해야 하느
니라’ 식의 애매함을 배제했다. 설령 어떤 사람이, 금기는 그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모호하다는 결과주의론적 견해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일련의 원칙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규칙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원칙들은 오직 좋은 결과를 가져올 때에만 비로소 정당화된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들의 권위를 설명하기 위해 행복이나 고통 이상의 그 어떤 모호한 개념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