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 형제단은 친민주정치를 운운한다

 

 

 

 

 

『파이낸셜 타임스』지의 기사에서 룰라 할라프는 무슬림 형제단이 “조직 면에서 유리하게 출발했고 매우 강력한 동원 수단— 종교— 에 의존할 수 있다” 고 시인했다. 그는 무슬림 형제단이 2005년에 실시된 선거에 참여한 점을 거론하면서(의석의 20%를 차지) “형제단”은 2년 후 적절한 정책 의제를 입안하려 했으나 여성과 비무슬림은, 정부의 방침을 심의하는 종교회의를 창설할 수 없고, 국가 수반의 자격 또한 금한 탓에 동요가 일어났다고 덧붙였다. 무슬림 형제단은 여론의 반대에 부딪쳐 이 같은 요구를 보류했지만 이슬람주의 의제는 포기하지 않았다. 때문에 무슬림 형제단이 친민주정치를 운운하나 일단 권좌에 오르면 가자지구와 이란에서 보이는 “이슬람식 민주정치” 를 실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무바라크 퇴진 이후, 조급한 선거는 악영향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이집트는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민주정치다운 모습을 찾기 위해 세심한 제도적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오늘날 중동에서 서양식 민주정치를 실시하는 데 필요한 민주주의 제도는 모두 실종되고 없다. 최근 정치 이론을 일부 살펴보면, 저개발 현상은 미개발 경제구조에 국한되지 않는다고들 한다. 기관이 형성되는 수준 낮은 정도가 저개발을 가늠하는 토대가 되는데, 중동의 권위주의 독재자들은 개인의 통치를 위해서 기관의 토대를 허물어버렸다. 이 같은 환경에서 독재정권이 몰락하자
이슬람주의자만이 채울 수 있는 정치적 공백이 생긴 것이다. 그들은 유일한 야권세력으로 중동을 넘어 다국적을 지향하는 지하 네트워크를 유지해왔다. 반면, 진보민주정치 야권이 이슬람주의자와 경쟁하기 위해 기관을 마련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선거가 민주화의 이름으로 실시되고 무슬림 형제단이 승리를 거머쥔다면 그들이 이집트 최초의 자유 헌법을 제정하는 데 극단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정교의 관계를 비롯하여 여성과 주류 및 의복을 규제할 것이라고 서술했다. 이에 대해 개혁안을 내세우며 대선에 도전하고 있는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 무함마드 엘바라데이는 “대표성이 희박한 의회가 대표성이 희박한 헌법을 제정하게 될 것” 이라 역설했고, 개혁당 당수인 오사마 가잘리 하릅은 “무슬림 형제단이 만반의 준비가 완료된 상태이므로 선거부터 치르자고 할 것” 이라고 덧붙였다. “세속주의 세력인 우리가 당을 통합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실상을 이해하려면 민주정치가 선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원주의 문화와 시민 사회에 대한 철학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선거를 당장” 치르고 싶어 하나, 시민 사회의 라이프스타일과 민주적인 다원주의 가치관은 배격한다.
이집트 혁명의 범위는 굉장히 넓다. 비이슬람주의자들은 무바라크 정권의 3대 사회악, 즉 열악한 개발정책, 실업률 및 빈곤율의 증가, 비밀경찰의 억압에 항거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데, 이 같은 사회악은 법적으로도 이미 부족한 정권의 자질을 더욱 떨어뜨리고 말았다. 시위의 대상이 된 정권이 주장한 바에도 불구하고 전문가의 견해에 따르면, 이슬람주의자들은 대규모 시위를 선동하지 않았다. 즉 튀니지와 이집트의 이슬람주의자들이 시위에 놀랐다는 이야기다. 자발적인 시위를 불러일으킨 조직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슬람주의 조직체를 제외하고는— 그 같은 동요를 유도할 수 있는 야권 조직이 없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집트라면 무슬림 형제단이, 튀니지라면 1981년 이후 라쉬드 알가누히가 무슬림 형제단을 본따 창설한 알나다가 그랬을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이 야권세력을 잔혹하게 억압하자 이슬람주의는— 유럽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유력한 네트워크와 함께 폭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치집단 외부에서 조직된 유일한 실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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