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은 검은 옷을 입은 예수회 수사의 모습에서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비슷한 시기에 융은 그가 마주친 검은 옷을 입은 예수회 수사의 모습에서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 예수와 예수회에 대한 인상 때문에 그는 종교의 외적인 면을 불신했고 교회에 가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꿈의 세계는 그를 내면의 영적 세계와 이어주고 그의 삶의 주된 방향을 이끌고 예견했다. 훗날 그는 보통 어린 시절의 꿈이 여러 차원에서 삶의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융이 기억하는 최초의 꿈은 서너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는 육십 대 중반이 될 때까지 그 꿈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신령적 상징성이 있는 그 꿈은 부모님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초원에서 펼쳐졌다.
꿈속의 나는 초원에 있었다. 갑자기 나는 돌로 에워싸인 어둡고 네모난 구멍을 땅에서 발견했다 …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곳으로 다가가 구멍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는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돌계단이 보였다. 두려운 마음에 주저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밑에는 녹색 커튼으로 가려진 둥근 아치 모양의 문이 있었다. 양단과 같은 천으로 만든 크고 무거워 보이는 화려한 커튼이었다.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궁금해진 나는 커튼을 옆으로 젖혔다. 희미한 빛 속에서 10미터 길이의 네모난 방이 보였다. 깎은 돌로 덮인 천장은 아치 모양이었다. 바닥에는 판석이 놓여 있었고 중앙에는 붉은 양탄자가 입구에서 낮은 재단까지 깔려 있었다. 이 재단 위에는 놀라울 정도로 화려한 황금 옥좌가 있었다.
확실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위에 붉은 쿠션이 놓여 있었던 것 같다. 동화에 나오는 왕이 앉을 법한 아름다운 옥좌였다. 그 위에는 무언가가 서 있었는데 처음에 나는 그것이 높이 약 4미터에 지름 50~60센티미터의 통나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천정에 닿을락 말락 할 만큼 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피부와 살로 되어 있었으며 꼭대기에는 얼굴도 머리카락도 없는 둥근 머리와 같은 것이 있는 매우 신기한 형상이었다. 머리 꼭대기에는 눈이 하나 달려 있었는데 그 눈은 요동 없이 위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방에는 창문도 없었고 빛이 들어올 만한 곳이 없었는데도 꽤 밝은 편이었다. 머리 위에는 밝은 기운이 머물러 있었다. 그 빛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언제라도 벌레처럼 옥좌를 기어 내려와 나를 향해 다가올 것만 같았다.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 순간 바깥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나에게 외쳤다.“ 그를 잘 보아라. 그는 식인귀야!” 그 말을 듣자 나는 더욱 겁에 질렸고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융은 그 꿈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는 고전과 종교, 오늘날과 선사시대의 원초적 문화를 연구하면서 수십 년 동안 그를 쫓아다닌 그 꿈의 의미를 조금씩 파악하게 되었다.
“이름도 없는” 지하의 신 … 남근상
✚ 제의적인 남근상
✚ 이 땅의 비밀에 입문
✚ 어린 시절 꿈속의 무시무시한 나무
✚“ 생명의 숨결”이자 창조적인 충동으로 드러났다.10
그가 말하는 남근상은 켈트, 독일, 그리스, 이집트, 중동과 극동 사람들이 숭배하던 강력한 남근신, 삶을 선사하는 창조적인 힘을 상징하는 신과 일맥상통한다. 융이 평생 연구한 것 중 많은 내용은 이런 원초적인 지하신에 뿌리를 두며 부성주의보다는 모성주의를 더 강조했다.
그 당시 나는 땅에 묻혔다가 몇 년이 지나서야 다시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이제 나는 가능한 한 가장 많은 빛을 어둠으로 가져가기 위해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안다. 나는 어둠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그때 나의 지적 활동이 무의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참고: 기원전 6세기경 선사시대에 제작된 뿔이 달린 켈트 신 케르눈노스는 외경심과
숭배심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힘과 존재감을 지녔다. 켈트어로 “뿔 달린 자”란 뜻의 케르눈노스는 가장 오래된 켈트 신들 가운데 하나로 그 기원은 프랑스 북부와 중부 그리고 영국에서 발견된 구석기시대의 동굴 벽화에 묘사된 뿔 달린 인물과 관련이 있다.
수사슴 뿔이 달린 케르눈노스는 짐승의 왕으로 간주되며, 뱀이나 늑대의 형상을 취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