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융이 군에 복무할 때 일련의 만다라 이미지가 그에게 떠올랐다

 

 

 

 

그 후 “상승하는” 천상의 신 또는 “쇠락하는” 땅의 신으로 활동하는 다양한 신들이 등장하는데 이 중 대표적인 네 신이 태양신, 에로스, 생명의 나무, 악마이다. “신들의 악마적 실체”인 영성과 성애는 천상에는 영성, 땅에는 성애가 위치하듯 한 영역에 속한 대극들이다.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는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같은 원칙에 속한” 대극들이다.
필레몬은 “일곱 가지 설교” 중 마지막 설교에서 인간은 “너희가 신들, 악마, 영혼의 외적인 세계에서 내면의 세계로 가기 위해 통과하는 관문”임을 밝힌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파괴하는 아브락사스”이며 자신만의 “신을 이끄는” 별을 가지고 있다. 후에 융은 동료 아니엘라 야페에게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설교”는 자신이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는 전조였다고 말했다. 그것은 개성화, 대극들의 충돌, 인간과 신의 공동 창조 등 융 심리학의 기본 틀을 이루는 핵심이 되었다.
하지만 『레드 북』의 여정은 계속되었다. 필레몬은 융에게 인간에 관한 더 깊은 가르침을 전했다. “존재로서의 인간은 영원한 순간이다.” 그림자로서의 죽음과 별들의 표면을 덮고 있는 천상의 어머니도 나타나 융에게 우주의 아이를 낳고 싶다면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융은 “사랑에 대한 충성과 자발적인 헌신”이 “별의 성격을 지닌 나, 가장 진실되고 내면의 가장 개별적인 자아”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으로 그림자(그리스도)가 등장한다. 필레몬은 “나의 스승이자 형제”에게 무릎을 꿇으며 그리스도에게 인간이 그의 삶을 모방하는 이상 “당신의 일은 완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각자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일을 해야만 비로소 그때가 온다.”
끝에 이르자 필레몬에 더해 엘리야, 살로메, 땅의 영혼인 카Ka[고대 이집트인이 생각한 사람 혹은 신의 혼] 등 그동안 등장했던 내면의 존재들과 융 개인을 구분하는 분명한 선이 그어진다. 영혼과의 최후의 싸움에서 융은 무조건 신들에 복종하기를 거부한다. 그는 비록 “그들이 답례로 돌려주는 것이 있겠지만” 인간은 더 이상 그들의 “노예”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처음에 신들은 분노했으나 결국 그의 말에 동의한다. 영혼이 융에게 말한다. “너는 법의 강제성을 무너뜨렸구나.” (그림자로서의) 그리스도는 선물로 마지막 한마디를 해준다. 빛과 어둠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내가 너에게 고통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겠노라.”
1916년, 융이 군에 복무할 때 일련의 만다라 이미지가 그에게 떠올랐다. 그가 처음으로 그린 만다라 <모든 세상의 체계Systema Munditotius>는 소우주와 대우주의 다차원적인 관계를 그리고 있다. “물질 세계의 왕”인 아브락사스가 아래에 있고 위에는 황금 날개를 가진 “신의 아이” 파네스Phanes[오르페우스 밀교 신화의 자웅 양성을 갖춘 개벽의 신]가 있다. 시간이 가면서 융은 자신의 글을 양피지에 필사체로 쓰고 삽화를 그려 그의 여정을 극적인 상징 이미지들로 표현했으며 이 모든 것을 붉은 가죽으로 제본한 600쪽의 2절판에 담았다.
융의 환자들은 그 책이 융의 서재 이젤 위에 놓여 있던 것을 기억한다. 융은 내면의 과정을 다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신만의 “레드 북”을 만들라고 환자들에게 조언했다. 크리스티나 모건은 융이 “책을 들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그것이 당신의 교회이자 대성당이 될 것이며 당신이 부활할 수 있는 영혼의 조용한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 책 안에 당신의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융은 1930년 중국의 연금술서 『태을금화종지』를 접하면서 『레드 북』 집필을 중단했다. 『태을금화종지』는 그의 사상이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한 확인”을 받는 계기였으며 동양과 서양의 연관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1959년 융은 『레드 북』에 필사한 한쪽을 추가하여 “나는 그런 체험에 소중한 무언가가 있음을 항상 알고 있었다”는 내용을 다시 강조했다. 그 내용은 문장 중간에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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