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올은 죽음・음부를 의미하는 수메르의 명계와 비슷한 개념이다

유대인・기독교인・이슬람교도에게 이 최후의 심판사상은 엄청나게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유대교에서는 아직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이 미비했다. 당시 유대교에서는 망자들이 스올에 간다고 믿었다. ‘황량함’이라는 뜻의 아카드어에서 유래한 스올Sheol은 죽음・음부를 의미하는 수메르의 명계와 비슷한 개념이다. 스올에서는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불러야 하며, 모든 것이 “흙속에서 쉴 때”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간다는 내용을 『구약성경』의 「욥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욥기」 17: 14~15) 페르시아인의 등골이 오싹한 장례풍습은 이민족들의 마음을 잡아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페르시아인은 “시체가 개나 새에 의해 갈가리 찢기기 전까지는 시체를 매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축생의 도움으로 살과 분리된 뼈는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구약성경』에는 유대인이 매장할 때 마땅히 아침 제례를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구절이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망자를 매장할 의무가 생겨난 연유에 대한 설명은 없다. 오늘날에도 유대인은 화장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매장만이 올바른 장례방식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처럼 유대인은 페르시아의 장례문화에서는 한 오라기만큼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최후의 심판사상만큼은 확실히 매혹적이었나 보다. 키루스 2세가 유대인이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것을 허락해준 후부터는 ‘부활’이라는 개념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예언자 다니엘도 자신 있게 외쳤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다니엘」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