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란 무엇인가

이 장에서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를 다루려고 한다. 공리주의의 개념과 그에 대한 몇 가지 비평을 검토한 다음 공리주의가 이런 비평들을 수용하면서 어떻게 발전해가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특히, 도덕의 문제를 놓고 떠오르는 자연스러운 생각들이 어떻게 공리주의 사상으로 발전해가는지, 그리고 비평을 넘어서기 위해 이 이론을 가다듬고 발전시키는 노력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 이렇듯 특이한 이론적 접근은 비단 ‘상아탑’ 안에서만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도덕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도 가치 있는 일이다.
공리주의가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설명한 이론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J. J. C. 스마트에 따르면, 공리주의자가 “행위 B가 아닌 행위 A를 실행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행위 A를 실행하는 것이 행위 B를 실행하는 것보다 인류(혹은 모든 지각 있는 존재)를 더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말을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보자. 먼저 공리주의가 행복이라는 결과에 집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좀 더 기술적인 용어로 표현한다면 공리주의는 결과주의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주의 이론가들은 어떤 행위는 도덕적 가치를 내포한다(요구되거나 금지되거나 하는 식으로)는 의무론자들의 주장을 부정한다.
여기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뚜렷이 하기 위해, 하나의 행위를 금지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보자. 어떤 신이 몇몇 행위를 금지했다고 하면,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신이 없는 가운데 예컨대, 자연주의(기본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연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상) 관점에서 도덕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신이 금했기에 그런 행위들은 본래부터 나쁜 것이고 따라서 금지되어야 마땅하다(다시 말하자면, 신이 그것들을 금지한 것은 그것들이 본래부터 나쁘기 때문이다)는 정도의 불완전한 추론을 앞에 놓고 우리는 불만을 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금지’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그 밖의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공리주의자들은 어떤 행위가 본질적으로 요청된다거나 금지된다는 식의 ‘으스스한’ 표현을 혐오한다. 이런 표현은 하나의 금기를 세우려는 것으로 비친다.
물론 사회마다 나름의 금기들이 있고, 이러저러한 행위를 금지하는 까닭에 관한 갖가지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공리주의자들은 금기란 따지고 보면 문화적 기준을 나타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금기 그 자체에는 아무런 타당성이 없다. 그렇다고 공리주의자들이 모든 도덕을 관습적이거나 금기와 같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설령 사회의 모든 금기에 대하여 우리가 의문을 품을지라도, 거기에는 적어도 행복과 불행을 포함하는 어느 정도의 실상이 깃들어 있기 마련이다.
“해서는 안 되느니라”라는 말씀은 들리지 않지만 현실의 고통은 아프기만 하다. 그래서 결과주의가 등장하는 것이다. 설령 금지되거나 요구되는 행위들에 관한 모든 주장을 우리가 ‘훑어보았다’고 하더라도,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어떤 현실은 다른 현실에 비해 더 고통스럽고 복지는 더 적어서 낫거나 못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결과주의자들은 현실에 관한 주장은 이해할 수 있지만, 행위의 내재적 가치에 관한 주장은 모호하기 때문에 현실만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결과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어떤 행위가 옳거나 그르다는 식의 가치를 띠고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 행위에서 빚어지는 선악의 현실로 나타나므로 그 행위가 파생적으로만 옳거나 그르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결과주의 이론은 어떤 현실이 가치 있는 현실인지를 명시하지 않는 한 완전할 수가 없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가치 있는 것이란 오로지 지각이 있는 존재의 행복이나 복지일 뿐이다. 결과주의 이론이 반드시 공리주의에 속하는 건 아니다. 공리주의가 아닌 형태의 결과주의 이론 또한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자유나 종의 다양성이나 창조성 같은 것이(그리고 이들이 자체의 가치를 지니지 않을 때에는 그것들이 초래하는 행복이) 현실을 가치 있게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지만 공리주의의 한 가지 뚜렷한 장점은 자연주의와 곧바로 조화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신비스럽다거나 본질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그 어떤 것에 기대지 않고서도 행복은 좋은 것이고 고통은 나쁜 것임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감각 있는 존재는 그것이 기본적으로 지니는 심리적 구성으로 하여 괴로움 앞에서 움츠리고 즐거움에 이끌린다.
스마트의 정의에서 또한 공리주의가 주로 인간 전체(아니면 감각 있는 존재 전반)의 이익에 관심을 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리주의의 가장 중요하고 매력적인 측면은 그것이 평등과 공정함을 지지한다는 점이다. 공리주의자는 현실을 선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행복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라는 전제 아래 오로지 현실의 선을 추구하면서, 한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과 마찬가지로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사고는 현대 사회에 보편화되었다. 태생, 인종, 성별, 사회계층 따위를 기준으로 어떤 사람의 이익을 다른 사람의 이익에 앞세우던 편견을 씻어내는 데 공리주의 사상이 얼마나 중요했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리주의는 그 출발단계부터 “한 사람은 하나로 셈해야 하며 어느 누구도 하나보다 더 많게 셈해서는 안 된다”고 부르짖던 급진적인 이론이었다. 한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