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에서 마르두크가 ‘최고신’으로 자리매김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바다의 여신 티아마트는 테티스 여신과는 아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특히 바빌로니아판 창세 신화에서 이 바다의 여신은 교활한 악마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가공할 괴물로 묘사된다. 근동에서 바다의 신을 사악한 존재로 표현한 것과는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물을 관장하는 용을 고귀하고 신성한 존재로 섬겼다. 고래로 중국에서 용은 비를 내리게 하는 물의 신, 구름・습지・강・바다를 관장하는 신으로여겨졌다. 하지만 아시아 대륙의 서쪽 변방에서는 용을 사악하고 불길한 동물로 간주했다. 동굴에 사는 용이건 바다에 사는 용이건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돌돌 감긴’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이름을 가진 괴물 레비아탄은 티아마트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다. 레비아탄은 『구약성경』과 우가리트(시리아 북쪽 고대 페니키아의 도시) 문서, 후대 유대 문학에서 언급되는 바다를 혼돈에 빠뜨리는 신화적인 바다 뱀 또는 용을 일컫는 괴물이다.
바빌론에서 마르두크가 ‘최고신’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다음의 세 가지 현상으로 이어졌다. 마르두크는 이제 바빌로니아라는 국가 전체를 수호하는 수호신이 되었다. 바빌로니아의 국력을 회복한 네부카드네자르 1세의 명실상부한 수호신이 된 것이다. 바빌로니아가 엘람 왕국을 무릎 꿇린 후 바빌론에 마르두크 신상이 다시 건립되었고, 바빌론인은 마르두크의 가호가 다시 한 번 자신들의 도시를 지켜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네부카드네자르 1세가 정권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마르두크 숭배에 더욱 열을 올렸던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한층 더 깊은 신심을 품게 된 건 이러한 정치적 선전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마르두크가 『에누마 엘리시』 서사시에서 전 우주를 수호했다는 이유로 마르두크를 숭배했다. 바빌론이라는 도시를 수호하는 지방 신에 불과했던 마르두크는 이제 만백성이 우러러 보는 신 중의 신이 되었다. 그는 이제 특정한 곳에서만 통하는 신이 아니었다. 마르두크를 전지전능한 최고신으로 모시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신이라는 존재를 더 가깝게 느끼기 시작했다. 신자들이 “마르두크는 제가 모시는 신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 전부를 의탁하고 언제나 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개인적인 종교를 처음 갖게 된 것이다. 드디어 바빌론 시민이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시편」 25: 4~5)라고 말하는 기독교인과 비슷한 태도로 신을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두크를 모시는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들을 원죄를 지은 죄인이라 여기지 않았다. 고대 서아시아인에게 ‘원죄’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었다. 죄를 짓는 것은 온전히 도시 법의 규제를 받는 문제였을 뿐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반면에 순결과 타락은 유대인의 신앙에서 중추적 개념이었다. 그들은 죄라는 개념을 통해 에덴동산이라는 낙원을 만들어냈다. 뱀의 사악한 속삭임에 속아 넘어간 아담과 그의 아내 이브는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다. 불복종의 쓰라린 대가였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뱀은 후에 사탄과 연관된다. 인간에게서 에덴동산을
빼앗아버린 뱀이라는 존재는 팔레스타인인의 신앙을 비하하기 위한 의도에서 등장한 것일 수도 있다. 뱀을 숭배하는 건 비의 신 바알 숭배사상의 일환이었다. 바알은 팔레스타인인이 숭배하던 풍요와 폭풍우의 남성 신이었다. 그리고 뱀은 모신의 상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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