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주의와 민주정치가 양립할 수 있는가

이슬람주의와 민주정치가 양립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은 알라 신의 통치(하키미야트 알라)에 기초한 신이슬람 질서라는 이슬람주의 사상에 달려 있다.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의 쟁점은 인간이 아닌 알라 신만이 세계를 통치할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와는 무관한, 민주정치의 국민 주권이 그와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정치를 샤리아로 바꾸려는 의지를 갖는다면 민주정치가 어떻게 발전할 수 있겠는가? 이슬람세계에서는 권위주의 정권과 이슬람주의 야권 및 이슬람주의와 진보 민주정치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나는 수니파 이슬람교에 중점을 둘 것이다. 이슬람주의와 민주정치를 둘러싼 논쟁이 아랍 수니파 사상가들에 의해 규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슬람교는 아랍 중동에서 처음 번성하여 외부로 번져나갔다.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및 이라크의 이슬람주의당을 살펴보더라도 이슬람주의자들이 정부에 합류한들 그들이 온건해진다는 보장은 없었다. 위 세 지역에서, 정치적인 이슬람주의 당은 선출된 의회와 정부에서 대표자 역할을 하면서도 반대세력을 위협하기 위해 테러리스트 민병대와 비국가 군대망을 거느리고 있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고 해서 온건한 민주주의 당으로 환골탈태한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이라크의 이슬람주의 다와당Da'wa party(교화당)은 이슬람주의가 지닌 제도적 다양성을 반영한다. 이는 시아파 지하드 조직체 둘과 공조하여 국가를 다스리고 있다. 첫째는 바드르 여단Failaq Badr을 둔 최고이슬람이라크위원회Supreme Islamic Iraqi Council(SIIC, SCIRI가 전신)와, 무크타다 알사드르 및 지하디스트 알마디 부대al-Mahdi army와 연합한 당파가 있다. 이라크에서는 제도적 이슬람주의와 지하디스트의 경계가 모호한 데다,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에 정권을 쥐게 한 “미국이 주도한 해방” 은 “외국인의 선물” 로 알려졌다 미국이 수니파 독재정권의 해방을 선사했다고는 하지만, 실은 사담 후세인을 이란에 망명했던 시아파 독재자로 갈아치운 것뿐이었다. 이는 민주정치화로 보기는 어렵다. 알사드르와 경합을 벌인다는 이유로 알마디 부대가 의회 선거에 출마한 후보의 사진을 게시하지 못하게 하는데도 이를 민주정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조직체는 2006년 선거에서 압승했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 타임스』지의 논평에서 칼 빌트와 안나 팔라치오는 각각 현역 스웨덴 외무장관과 스페인 전 외무장관으로서 이를 민주정치의 결실이라고 극찬했다. 독재적이면서도 종교와는 무관한 파타당Fatah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축출해낸 하마스 이슬람주의자들의 태도는 권력 분담의 의지를 입증할 만한 증거는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입장은 정착지에서 기존의 이슬람주의와 세속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을 심화시켰고, 결국 파타당은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사태가 반복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서 하마스와는 손을 잡지 않기로 했다. 한편,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상대로 테러를 자행하면서 선거를 실시했다. 그로부터 1년 후, 하마스는 민병대를 동원해 군사 쿠데타를 벌여 가자지구에서 권좌를 차지했다. 미국과 EU는 이를 “테러리스트” 조직체로 규정했고, 자유선거는 하마스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창설한 헌법재판소를 제거하고는 반체제인사를 재판 없이 투옥시켰다.
터키의 AKP는 총탄은 없으나 (AKP는 현지 경찰을 통제하지만 사립 민병대는 없다) 2006년 선거 이후 하마스에서 차출한 대표단을 수용하고 2008~09년에 치른 가자 전투에서 이를 지원한 제1대 정부였다. 아랍국가 중, 이란만이 그의 전철을 밟았다. AKP는 터키 헌법에 신앙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규정하지 않고 있는 데다, 세속 판사와 대학 총장을 당에서 차출한 이슬람주의자로 대체하고 있다.
2008년 당시 헤즈볼라46는 레바논 의회에서 128석 중 14석을, 내각에서는 30개 중 11개 직책을 차지했으나 헤즈볼라가 장악한 지구에서 민병대로 활동하는 비정규군을 계속 거느리고 있었다. 2008년 7~8월, 이스라엘 방위군은 민병대를 해체할 수 없었다. 사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의 분쟁에서 사기가 충천해졌다. 레바논 공군은 헤즈볼라가 통제하는 군사 지역을 비행할 수 없고 육군도 진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 구역은 국가 내의 또 다른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현재 헤즈볼라는 민주적인 실세일까, 지하드 조직일까? 결론을 어떻게 내려야 할까? 여러분의 입장에 따라 결론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당은 (적어도 정권을 쥐기 전까지는) 선거에 참여하지만, 흔히들 알고 있거나, 민주정치다운 의미를 살리기 위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민주정치를 실시하는 당은 전혀 없다.
민주정치와 민주화가 이슬람세계의 미래를 비추는 최선의 약속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슬람세계의 민주정치의 위기를 감안해볼 때, 이슬람식 민주정치의 모범 사례는 중동 밖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0년간, 나에게는 아랍 중동뿐 아니라 그 밖에서도 이슬람교와 민주정치를 연구한 덕분에 아랍중심주의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기회가 있었다. 서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 연구와 교육을 병행하던 나는 이슬람교와 민주정치가 “유럽에서 만난다” 는 주장을 뒤엎는 “민간 이슬람교” 와 맞닥뜨리게 되었다.서방세계에서 이슬람 소수집단은 폐쇄적인 공동체에 자리 잡은 정체성 정치의 전매특허인 변명과 변호 문화에 빠져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이슬람식 민주정치의 다른 원천은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도네시아의 민간 이슬람교는 민주정치에 호감을 갖고 있으나 아랍세계의 사상에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 나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연구를 했는데, 현지인들에게 그들이 신봉하는 이슬람교가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치는 아랍 선교사들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자도 일부 포함하여)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중동에서 민간 이슬람교를 설파하는 인도네시아 무슬림은 한 사람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카이로의 알아즈하르 대학에서는 민간 이슬람교를 저해하는 살라피 이슬람교Salafi Islam[교리와 관행을 충실히 따르는 이슬람교]를 고국에 전파하기 위해 이를 배우고 있는 인도네시아인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