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는 메디아인과 바빌로니아인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이 승리에는 군사적 이해득실보다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사서에 기록되어 있듯 이 승리 덕에 “위대한 신 마르두크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다시 이 땅을 보살피러 돌아오셨다”고 하니 말이다. 네부카드네자르는 마르두크를 바빌론의 수호신일 뿐만 아니라 온 바빌로니아를 다스리는 모든 신 가운데 최고신으로 선포했다. 이런 행보에는 엘람 왕국을 상대로 힘들게 얻어낸 드문 승리를 효과적으로 선전하려는 속셈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바빌론의 군주들은 매년 마르두크 신전에서 그들의 통치권을 확인하는 신년의식에 참여했다. 이 의식을 위해 주변 대도시의 수호신들이 바빌론으로 이송되었다. 다른 도시들의 수호신들이 마르두크 신전에서 거행되는 의식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 관행은 사회가 너무 불안정하여 다른 도시들에서 바빌론까지 신상을 옮기는 것이 너무 위험해진 네부카드네자르의 통치 말기까지 지속되었다.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는 별다른 권력투쟁을 하지 않았다. 전쟁이라고 해봐야 몇 차례 일어난 소규모 접전이 전부였다. 아시리아는 티그리스 강과 그 주요 지류가 합류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바빌론 북부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시리아의 완만한 구릉지대에는 주기적으로 비가 내렸고, 덕분에 목자와 농부들이 이곳에서 삶을 이어갔다. 아시리아에서는 바빌로니아와 달리 대추 재배가 불가능했다. 대신에 포도 재배가 가능했고, 아시리아인은 포도를 그대로 먹거나 포도주를 담갔다. 성경에는 칼라흐(님루드의 고대명)라는 명칭으로 등장하는 님루드에서 엄청난 규모의 포도주 저장고와 포도주 리스트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님루드는 이라크 북부 아르마우실의 남동쪽 35km 지점에 있는 아시리아의 대도시이다. 이라크 북부의 티그리스 강 서쪽 기슭에 있던 아슈르와 니네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님루드는 아시리아 군대의 사령부가 위치한 도시였을지도 모른다.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평정하여 아시리아 신제국을 건설한 아슈르나시르팔 2세가 전쟁의 신 니누르타에게 바친 님루드 신전에는 고대의 잔혹상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870년경 아슈르나시르팔 2세는 치가 떨리는 방식으로 적들을 처치했다. 그는 적의 “목을 밟고 서서 옷감을 물들이듯 그들의 피로 산맥을 빨갛게 물들였다”고 한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해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왕은 포로들의 “코, 귀와 사지를” 잘라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눈을 뽑아내고”, “죄수들을 태워 죽였으며”, “반란군들의 살을 베어내거나” 산 채로 “가죽을 벗겼다”고 한다. 끝까지 굴종을 거부한 적국 통치자의 가죽을 벗겨 “니네베 성벽에 걸어 놓았을” 정도였다. 학살・약탈・대규모 이주정책은 아시리아 통치자들이 즐겨 사용한 정복의 도구였다. 그들은 “위대한 신 아슈르와 아다드로부터 부여받은 최고의 통치권”을 들어 이런 야만적인 정복방식을 정당화했다. 아시리아의 통치자들이 그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이 같은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아시리아의 막강한 군사력 덕분이었다.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의 궁전 부조에는 니네베 사람들이 포도를 즐겨 먹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부조에는 그리스인처럼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포도주를 마시는 광경이 새겨져 있다. 토론장에서 남성들과 어울려 포도주를 즐겼던 그리스인과는 달리 아슈르바니팔은 아내 아슈르-슈라트 왕비와 술잔을 나누었다. 그녀는 왕 앞에 있는 옥좌에 앉아 군주이자 주인인 남편을 응시하며 포도주잔을 입술에 갖다대었다. 파리를 쫓는 하인들의 손이 바빠졌다. 벌레들이 국왕 부부의 휴식을 방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근처 나뭇가지에는 엘람족의 왕 테-우만의 목이 매달려 있었다. 아늑한 정원에도 유혈이 낭자한 아시리아 통치자의 천성이 흘러 넘쳤다. 잘린 목 주위에 새까맣게 내려앉은 새들이 눈을 파내고 시뻘건 살을 쪼아댔다. 막강한 절대권력자 아슈르바니팔은 포도주를 음미하며 고대 서아시아의 종주국 아시리아가 불멸의 대제국이라는 생각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기원전 627년 그가 생을 마감하고 15년 뒤에 아시리아는 멸망한다. 그의 두 아들이 왕권을 놓고 벌인 다툼 때문이었다.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아시리아는 메디아인과 바빌로니아인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