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주의자들이 민주정치를 이용하다

“온건파 이슬람주의” 는 제도적 이슬람주의가 친민주정치 조직체라는 가정에 근거한 환상이다. 이슬람주의가 이슬람교의 윤리,38 즉 이슬람교를 민주정치와 양립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것에 뿌리를 둔다면 모순도, 환상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의 정치 이데올로기는 이슬람교의 윤리나, 다원주의와 권력 분담이라는 민주주의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이슬람주의의 주요 정치적 관심사는 이슬람식 제도,즉 신이슬람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슬람문명이 특히 중동에서 맞닥뜨린 난제들 가운데 하나는 민주정치 및 인권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집트의 진보주의 무슬림인 사아드 에딘 이브라힘이 지적했듯이, “우리는 집권 독재자와 이를 반대하는 신정주의자 사이에 엉켜 있는 셈이다.” 이슬람주의는 중동에 포진한 권위주의 및 전제주의 정권의 필요한 대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컨대, 이슬람주의자들은 한 가지 골칫거리를 다른 것으로 바꿀 뿐이다. 이브라힘은 이 같은 소신을 밝혔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아 모국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지금 망명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을 보면 제도적 이슬람주의가 민주주의라는 정치 문화와 양립할 수 있다는, 검증되지 않은 가설의 진위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일찍이 제기된 제도적 이슬람주의와 지하드운동의 차이는 “급진파” 와 “온건파” 이슬람주의나 이슬람교보다 훨씬 더 유익한 정보를 담은 카테고리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정치 용어인 “급진파” 및 “온건파” 는 “이슬람교” 와 짝이 되면 존재하지도 않는, 독트린의 차이를 암시한다. 게다가 “이슬람주의” 를 “급진주의” 라든가 “광신도” 혹은 “극단주의” 와 혼용하는 것 또한 잘못이다. “급진파” 는 행동이 극단적인 소수를 의미하는데 사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세계에서 대중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사상이다. 조직을 갖
춘 이슬람주의자들은 머릿수가 소수이지만 부유한 걸프사Gulf로부터 재정 후원을 받는가 하면 임의로 쓸 수 있는 시설도 아주 많다. 제도적 이슬람주의자와 지하디스트는 전술이 다를 뿐, 독트린이나 이슬람주의식 통치라는 근본 목표에는 차이가 없다. 제도적 이슬람주의자들은 지하드운동의 폭력에 가담하지 않고, 대신 민주정치 놀음을 일삼고 선거에 동의하기도 한다. 그들은 샤리아에 기반을 둔 신이슬람 질서를 이룩하기 위해 이슬람주의 조직체의 목표를 여전히 공유하고 있다. 이슬람주의식 세계관에는 보편적인 신 중심주의rabbaniyya(라바니야)에 근거한 이슬람교의 지배(시야다트 알이슬람)도 포함된다. 종교 기반 이슬람주의식 국제주의는 다원주의 민주정치와 권력 분담과는 상극이다.
민주정치가 단순한 투표 절차에 국한된다면 전체주의 조직체가 집권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때 이를 거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민주정치에는 선거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정치 문화는 시민 다원주의를 비롯하여 사회 및 국가의 권력 분담이 필수요소다. 물론 선거가 없는 민주정치는 존재할 수 없으나, 적절한 정치 문화와 국민의 제도가 자리 잡지 않은 민주정치 또한 확산될 수가 없다. 따라서 다양성 개념이 어느 정도 민주정치에 적용되는 것이다. 민주정치 관행에서 파생된 다양한 변수에도, 민주정치에도 인권과 같이 축소될 수 없는 보편성이 수반된다. 진보적인 아랍인 중 민주정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같은 민주정치의 핵심 가치관에 동감한다.
이슬람주의가 이슬람세계에서는 누구도 간과할 수 없는 야권세력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슬람주의 조직체들은 기존 독재자의 유력한 반대파일 뿐 아니라 집권할 각오가 된 주역이기도 하다. 여러 지역들에서 이슬람주의자의 집권 여부보다는 권력에 무엇을 덧붙이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지에 게재된 논평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과격한 시각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최선의 희망”이라고 밝힌 것은 서방세계의 보편적 식견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자의 역
할을 확대한다고 해서 참여정치의 합류라는 신규 정책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하마스는 2006년에 실시된 선거에서 승리하고는 얼마 후, PLO 반대세력을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투옥시켰다. 그리고 1년 후에는 군사 쿠데타로 승리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