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드의 몰락 이후 수메르 문화의 마지막 전성기가 도래했다

 

 

 

 

인간의 언어를 점토판에 새겨넣을 수 있게 한 이 횃불과도 같았던 발명은 고대 무역로를 따라 이방에도 전해졌다. 바빌론에서도 아카드어Akadian(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지방을 포함하는 지역의 셈족의 언어)를 설형문자로 기록했다. 이는 수메르어가 사멸된 한참 후에도 고등교육을 받은 계층은 수메르인이 개발한 설형문자체계를 섭렵하고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유럽 지배계층이 라틴어를 애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셈족은 수메르인이 바빌로니아 북부지역에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이곳에 진출했다. 그 후 지속적으로 이어진 셈족의 유입으로 결국 수메르인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엘람Elam은 이란에서 최초로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의 예를 따른 도시였다. 엘람족은 바레인Bahrain 섬을 지나 인도로 가는 메소포타미아와 인도 간 무역로를 개척했다. 이 무역로를 통한 메소포타미아와 인도 간의 상거래는 인더스 문명 내 기록체계의 탄생을 촉발시켰다. 하지만 인도로 전해진 이 기록체계가 중국으로 전파되었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근방의 요새 마을터인 반파 유적에서 이 주장을 뒤엎을 만한 증거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반파 유적에서 중국 상형문자의 전신이라 할 만한 문자들을 새겨놓은 도기가 발견된 것이다. 이는 수메르인이 설형문자를 점토판에 쓰기 시작했던 것과 얼추 비슷한 시기에 중국인이 고유의 기록체계를 이미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비록 완전히 발전된 문자체계의 흔적은 상나라의 유물에서나 발견할 수 있지만 말이다.
상나라의 왕들은 신처럼 받들던 조상들에게서 얻은 신탁의 내용을 신성한 뼈에 새겼다. 하지만 수메르인의 문명에 비견될 정도로 오래전에 자리 잡은 중국 고대문명의 흔적에서 문자의 기록이 발견된 것은 설형문자 전래설을 반박할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수메르인의 국가 통일로 인해 종전에 왕이 중재에 나서야만 해결되었던 도시 간의 분쟁이 현격히 감소했다. 아울러 발전된 정부제도 덕에 현존하는 최고의 법전을 담은 점토판인 우르남무 법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수메르 도시국가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인류 최초의 법이 탄생한 것이다. 그 후로 유명한 함무라비 법을 비롯하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법이 제정되었다. 수메르 도시국가 말기의 라가시Lagash 왕 우르남무는 선대 왕들이 사원의 재산을 압류한 것을 개탄하여 과감한 사회개혁을 단행했다. 법전의 제정 및 압류한 재산의 반환은 이런 개혁조치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반대파에 의해 라가시에서 내몰린 그는 라가시 북서쪽의 도시국가 기르수Girsu의 왕이 된다. 그리고 기원전 2340년 아카드의 셈족 통치자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 죽음을 맞는다. 아카드가 정확히 어디에 위치했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지만, 이 고대도시는 바빌로니아 북쪽 근방 어딘가에 위치했다. 셈족의 한 갈래로 유목민이었던 아카드인으로 대변되는 황제 권력의 등장은 수메르인의 독립국가 시대를 종식시켰다. 수메르인의 도시국가들을 정복하여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통일국가를 건설한 아카드인이 선호한 지배의 도구는 대규모 학살이었다. 아카드인은 동부 소아시아뿐만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피와 공포로 제국의 명맥을 영원히 이어갈 수는 없었다. 아카드에는 반유목민 구티족이라는 적수가 있었다. 이란 산지에서 내려온 이 용맹한 종족은 아카드인이 사용한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셈족과 수메르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아카드의 몰락 이후 수메르 문화의 마지막 전성기가 도래했다. 우르 제3왕조의 2대 왕 슐기의 사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기원전 2050년경 슐기 왕은 수도 우르에 산을 등진 성벽을 건설하여 호시탐탐 이라크 남부를 노리는 이란의 호전적인 침략자들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슐기 왕과 같은 태평성대를 누리지는 못했다. 이란과 동맹
을 맺은 엘람 왕국1의 맹렬한 공격에 수메르의 마지막 왕조는 힘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고국의 멸망을 한탄한 한 수메르인의 말이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끔찍하게 메마른 수로에선 잡초 한 뿌리도 자라지 않고, 비옥한
토양에 울리던 곡괭이질 소리는 들리지 않네. 씨앗이 심기지 않은
빈 땅을 일구는 이 없고, 평원에는 소를 치는 목자의 노래가 울려
퍼지지 않으며, 외양간에서도 우유 젓는 소리를 들을 수 없네.

 

고대의 삶은 영원한 저편으로 사라졌다. 폐허가 된 도시 우르에서는 사람의 흔적은 고사하고 개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