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건파 이슬람교” 를 자처하고 있다

2011년 초, 민중 봉기에 직면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군대는 국가를 효과적으로 통제했고, 국내에서 공정한 선거가 치러지더라도 권력은 다수당을 차지할 가능성이 큰 무슬림 형제단에 돌아갈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집트가 그토록 고대했던 민주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주의식 통치는 권력을 공유하지 않고, 종교적인 전체주의가 세속 권위주의를 갈아치울 따름이다. 1928년에 당을 창건한 전임자들과는 달리, 오늘날의 무슬림 형제단은 그럴듯한 말로 민주정치를 운운하며 다양한 근대화라는 맥락에서 공생할 의지가 있는 “온건파 이슬람교” 를 자처하고 있다. 이것이 단순한 기만(이함) 전술일까, 아니면 새로운 사고방식을 대변하는 것일까? 무슬림 형제단의 어떤 행동을 보고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민주정치라는 시민 문화와 양립할 수 있겠다 싶은가? 정보에 정통하다면 터키 이슬람주의자들이 중동의 신오스만 지도부를 주장하면서, 점차 농도가 짙어지는 무슬림 형제단과 AKP의 커넥션을 눈치챘을 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은 미국과 유럽을 비롯하여, 이집트 밖에서도 세력을 키워 명실상부한 다국적 조직으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어느 전문가 팀은 이 조직을 연구하여 『무슬림 형제단』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출간했다.30 편집은 배리 루빈이 맡았다. 사례별 연구에서 저자들은 무슬림 형제단이 민주적인 조직체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했다. 데이비드 리치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조직을 연구하여 “타리크 라마단은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슬람주의 대변자 중 하나” 라고 주장했다. 라마단은 본토인 스위스에서는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고 그는 덧붙였다.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그랜드 모스크의 이슬람교 지도자(이맘) 달릴 부바커가 대표하는 강력한 진보주의 진영인 프랑스 이슬람교의 세력으로 현지에서도 성과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영국을 밟게 되는데, 리치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무슬림 형제단이 진보적인 민주정치와 대립되는 사상을 선전하며, 형제단의 이데올로기는 근본적인 진보 가치관을 거부했다” 32고 한다. (또 다른 저자인 아나 B. 소에지는 무슬림 형제단을 이끄는 유수프 알카라다위를 이슬람주의 소수집단의 “최고 이데올로기 가이드” 라고 불렀고, 폴 버먼은 라마단이 알카라다위를 숭앙한 점에서 그를 “라마단이 추앙한 영웅” 이라고 했다.) 라마단의 제도적 이슬람주의는 겉으로는 민주정치를 격찬하고 폭력을 금하겠다고 하나, 유럽에 진출하려는 그의 비전은 무슬림 이민자가 “진심으로 유럽 시민이 되어야 한다” 는 의미는 아니다. 라마단이 정말 원하는 것은 버먼이 지적했듯이, “서방 이슬람교의 이름으로 본연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서방세계와 대립하는 무슬림 문화” 였다. 진보주의 무슬림은 이 같은 모험에는 세력을 합류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는 이슬람주의화 정책과도 매우 흡사하다. 유럽을 이슬람주의로 만드느냐, 이슬람교를 유럽식으로 바꾸느냐의 두 가지 대안이 대립하고 있다면 무슬림 형제단을 유럽에까지 확산시킨 것은 전자에 해당될 것이다 .
혹자는 제도적 이슬람주의가 서유럽을 이슬람주의의 망명처로 취급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정작 이슬람세계에서는 취득할 수 없었던 시민권을 유럽에서 누리고 있다. 유럽 국가의 현장조사를 토대로 실시한 최근 연구에서 로렌조 비디노는 무슬림 형제단 조직체가 유럽에서 얻은 권력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했다. 그는 무슬림 형제단을 “그들의 번영을 허용한 그 자유를 되레 파괴하려는 능란한 사기조직” 으로 치부하며, 제도적 이슬람주의를 반박하는 논객들의 말을 인용했다. 비디
노는 이에 동감했으나 무슬림 형제단을 불법 조직으로 규정하려는 정책은 반대했다. 한편, 그의 연구 결과는 “새로운 서방 형제단New Western Brothers의 목표가 서방 조직체와의 대화에서 공개된 것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기했다.” 반면, “비폭력 이슬람주의자들은 간과할 수 없는 실체” 였다. 그렇다면 민주정치는 이 같은 도전에 어떻게 응수해야 할까? 나는 민주정치를 지지하는 자라면 비폭력 이슬람주의자들의 사회참여 권리를 박탈하진 않는다는 비디노의 의견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참여와 위임의 차이는 이슬람세계에서나 유럽의 소수집단, 혹은 미국에서든, 민주국가가 제도적 이슬람주의에 대처할 방안을 짜낼 것이라면 꼭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식견은 무바라크가 축출된 이후의 이집트와 매우 관계가 깊다. 선거든, 다른 수단으로든 무슬림 형제단이 권력을 쥐게 된다면 이슬람주의 정권이 조성되거나, 인도네시아처럼 민간 이슬람교가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