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우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을까?

급진주의 견해에 대한 두 번째와 세 번째 반론은 예컨대, 어떤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거나 연장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옥스팜에 돈을 기부하는 것과 내가 새 신발을 사는 것을 단순 비교할 일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두 번째 반론은 소유권의 개념을 이 토론에 끌어들이려 하고, 세 번째 반론은 못 본 체하는 잘못이 적극적인 악행과 같은지를 따지고 나온다. 이러한 반론들이 타당한지를 가리기 위해 먼저 그 바탕에 깔린 원칙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들이 과연 쓸모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앞 장에서 한 것처럼 이들이 몇 가지 문제 영역에서 모순 없이 고르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이제 낙태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 과정에서 2장에서 살펴본 인간 완성도의 기준과는 아무 상관없는 놀라운 사례를 만날 것이다. 이 사례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반론에 나타난 견해를 대변한다.
이 사례는 주디스 자비스 톰슨12의 「낙태를 옹호함A Defense of Abortion」이란 논문에 나온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바이올린 연주자와 등을 맞댄 채 누워있다. 의식을 잃었지만, 그는 아주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신장병으로 위중한 상태였는데, 음악사랑 모임의 회원들이 모든 의료 관련 자료를 훑어보며 그를 살릴 수 있는 혈액형을 가진 사람을 찾다가 오직 나뿐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간밤에 나를 납치하여 바이올린 연주자와 나의 순환계를 이어붙여 나의 신장으로 두 사람의 혈액을 정화할 수 있게 했다. 병원장이 말한다. “이봐요. 미안해요. 음악사랑 모임의 회원들이 이렇게 하라고 했어요. 미리 알았더라면 허락하지 않았을 거예요. 어쨌건 저 사람들 때문에 지금 바이올린 연주자는 당신과 이어져 있죠. 연결을 끊으면 이 사람은 죽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아홉 달이면 되니까. 그때가 되면 이 사람은 나을 것이고 당신과의 연결을 끊어도 되죠.”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도덕적 의무를 지고 있을까? 받아들인다면 나는 더없이 훌륭한 사람이다. 대단한 자비를 베푸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까?
아홉 달이 아니고 아홉 해라면 어찌할까? 그보다 훨씬 더 오래간다면 어찌할까? 병원장이 또 이렇게 말한다. “참 불행한 일이네요. 인정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제 이 바이올린 연주자와 연결된 채 침대에 누워서 여생을 보내야 해요. 왜냐하면요, 이걸 기억 하세요. 모든 사람이 생명의 권리를 지니고 있는데, 바이올린 연주자도 사람이죠. 물론 당신의 몸 속에서나 당신의 몸에 대해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결정하는 건 당신의 권리지만, 당신의 그 권리보다는 생명의 권리가 우선이든요. 그래서 당신 맘대로 연결을 끊을 수 없어요.” 이에 이르면, 분노를 참을 수 없으리라.
톰슨은 이 논문에서 태아가 생명의 자유를 지닌 사람이란 이유로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생명의 권리가 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용납될 수 없기에, 낙태 역시 허용될 수 없는 일로 간주할 만하다. 낙태는 생명의 권리가 있는 존재를 죽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낙태를 둘러싼 논의는 대체로 무엇이 우리에게 생명의 권리를 허용하는지, 그리고 태아는 이러한 권리를 지닐 만큼 발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언제 그렇게 되는지 같은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톰슨은 이런 논의가 그릇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지적한다. 설령 태아에게 생명의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낙태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낙태와 상통하면서도 명백히 온전한 하나의 인간적 존재가 등장하는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설정을 배경으로, 톰슨은 이 인간적 존재의 생존을 거부하는 것이 자신의 권리라고 부르짖는다. 도덕적으로 낙태를 용인해야 한다는 이 충격적인 주장은 앞서 언급된 급진주의 견해에 대한 반론과도 조화를 이룬다. 톰슨은 도움을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을 옳지 않은 행위라고는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주장에서 출발하여 낙태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알고 보면 톰슨의 주장은 앞서 살펴본 첫 번째 반론과 일치한다. 둘 다 같은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자신이 번 돈을 자선을 위해 쓰기보다는 자신을 위해 쓰듯이, 자신이 희생하지 않으면 남이 죽는다 해도 상황에 따라서는 권리를 내세워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