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은 수메르 모든 사회 핵심기반의 중심이었다

수메르인이 어떤 경로로 이라크 남부에 도착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학자들은 수메르인이 서쪽 방향으로 이동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인더스 문명 발견 이후에는 그들이 인도 서북부의 초기 정착민이었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현재의 이란 지역에 거주하던 수메르인이 비옥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지역으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지역의 엄청난 농업 잠재력에 이끌려 이동한 다른 민족들처럼 말이다. 또한 수메르인이 처음부터 이라크 지역에 계속 거주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만나는 곳에서 우리가 바빌로니아로알고 있는 나라가 서남아시아 고대문명의 황금기를 일궈냈다. 바빌로니아는 메소포타미아 남동쪽, 바빌로니아 남부에 위치한 수메르란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건국한 나라란 뜻이다. 우리가 바빌로니아인이라 부르는 이 뛰어난 고대 민족은 자신들의 나라를 켄지르라 명명했다.
켄지르Kengir는 ‘문명화된 땅’이라는 뜻이다. 켄지르는 페르시아 만에서부터 현재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100km 떨어진 곳에 있던 도시 니프루(현대명은누파르)까지 이어지는 대제국이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 특유의 반 건조한 기후 탓에 물을 끌어들이는 일은 애초부터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자연스럽게 인공수로가 발전했고, 나라 전역에 거미줄처럼 건설된 인공수로의 지속적인 감독・준설・수리는 국가의 주요 업무들 중 하나였다. 놀라운 수자원 관리능력을 보유한 켄지르의 휘하로 인근 도시들이 하나둘 편입되었다.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왕이나 왕자의 통치 아래 있던 도시들이었다. 각 도시는 저마다의 수호신을 모셨으며, 군주는 수호신에게 선택된 주권의 대행자였다. 각 도시의 군주는 엔시ensi, 또는 루갈lugal로 불렸다. 수메르인은 최초의 왕조를 설립한 시기로 알려져 있는 기원전 2650년경의 초기 왕조 시대에 이르러서야 도시의 왕자, 엔시, 왕, 루갈 등 통치세력의 개념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수메르 왕의 권력기반은 엄청난 수의 친위대였다. 왕의 소유물이나 다름없던 이들에게는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일부는 왕이 목숨을 살려준 포로들 가운데서 차출되기도 했다. 이런 관행이 중세까지 이어졌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술탄이었던 메메트 2세의 친위 보병 모두 145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생포한 기독교인 노예들이었다. 평생토록 왕의 그림자 역할을 해야 하는 이 친위대원들은 술탄의 개인 경호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오스만투르크의 친위보병처럼 이 친위대원들은 왕에게 육신과 영혼을 모두 바친 신세였다. 그들은 왕과 함께 궁전에 기거하며 먹고 마실 때를 포함한 모든 순간에 늘 함께해야 했다. 전시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왕의 분부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이런 군사력 외에도 추가적인 권력기반이 필요했던 슬기로운 통치자들은 수메르 사회의 소외계층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부와 권력을 소유한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법체계를 고안하여 사회 정의의 실현을 도모했다.
도시들이 신전을 중심으로 팽창해나갔기 때문에, 수메르인은 각기 모시고 있던 지방 신에게 번영을 기원했다. 신전은 수메르 모든 사회 핵심기반의 중심이었다. 최남단에 위치한 습지 인접 도시들에서는 낚시와 새 사냥을 주관하는 지방 신을 모셨다. 강 상류에 위치한 도시에서는 밭과 과수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을 모셨다. 특히 대추 야자를 재배하던 이들은 다산의 여신 이난나의 신성한 능력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초원에서는 신성한 목자 두무지Dummuzi를 섬겼다. 이난나Inanna는 여러 신의 모습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수메르 최고의 여신으로 ‘천상의 여왕’이라는 뜻의 니난나Ninanna란 별칭으로도 불렸다. 아침과 저녁의 별, 즉 금성이 바로 이 여신을 상징하는 별이었다. 이 메소포타미아 대표 여신은 ‘죽음의 여왕’인 언니 에레슈키갈Ereshkigal과 철천지원수 사이였다. 어느 날 이난나는 ‘명계’에 발을 들이는 무모한 선택을 한다. 자신의 권능을 언니가 지배하는 돌아올 수 없는 땅에서까지 증명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명계로 들어가려면 일곱 관문을 지나야 한다. 매 관문을 지날 때마다 이난나가 입고 있던 옷가지며 지니고 있던 장신구가 모두 벗겨졌다. 결국 그녀는 발가벗은 몸으로 에레슈키갈 앞에 서게 된다. 때를 만난 잔인한 언니는 이난나를 지독한 고통에 시달리다 죽게 만든다. 그녀의 시신이 명계의 말뚝에 매달린 지 사흘째 되는 날 물의 신 엔키가 두 명의 거세된 남자를 보냈고, 이 거세된 남자가 ‘생명의 음식과 물’을 뿌리자 이난나가 되살아났다.
이난나는 가까스로 명계에서 벗어난 후에도 섬뜩한 명계 신들의 경호를 받았다. 어디든지 쫓아오는 악의 그림자를 피하기 위해 그녀는 이 도시 저 도시로 떠돌아다니는 방랑을 하게 된다. 명계의 신들에게도 합당한 이유는 있었다. 그녀가 명계의 규칙을 어겼으니 이난나가 그녀를 대신할 자를 내놓을 때까지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고향 우루크로 돌아온 이난나가 발견한 것은 태연히 연회를 벌이고 있던 남편 두무지였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그녀는 명계의 신들에게 두무지를 에레슈키갈의 명계로 데리고 가라고 명한다. 결국 두무지는 일 년의 반은 생명의 땅에서, 나머지 반은 죽음의 땅에서 보내는 신세가 되었다. 서아시아 최초의 죽음과 부활의 신이 탄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