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역사>의 머리말

 

 

 

“그건 불가능합니다. 고대 그리스는 제 인생을 통째로 바쳐야 했을 정도로 방대한 연구과제인걸요.” 옥스퍼드 대학의 한 연구실에 조지 포레스트의 당황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때는 어느 금요일, 그가 막 5,000단어 분량으로 고대 그리스를 설명해달라는 내 부탁을 전해들은 직후였다. 당시 난 편집자로서 『펭귄 고대문명 대백과사전Penguin Enc
yclopedia of Ancient Civilization』을 집필하고 있었다. 난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만약 그가 오는 화요일 군부정권의 총탄에 스러질 운명이라면, 그래서 이번 의뢰가 그의 고견을 세상에 길이 남길 마지막 기회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하겠습니다”란 대답이 돌아왔다. 돌이켜보면 내겐 참 다행한 일이다. 아직 그의 저작에 필적할 만한 고대 그리스의 소개글은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이 책의 발행인 닉 월워크가 아시아 역사 입문서를 출간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을 때 난 포레스트가 느꼈을 막막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백과사전 편집에 비하면 분량의 제약이 덜한 것은 사실이나, 아시아란 엄청나게 방대한 시공간의 얼개를 한 권의 책에 담아내는 일은 막막하기 이를 데 없는 과제였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과제에 선뜻 도전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세계문명의 지형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아시아 대륙에 대한 개괄적인 입문서가 전무하다는 사실 말이다.특히나 금세기에 아시아가 전 세계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므로, 이 놀라운 대륙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어떻게 이곳의 사람들과 조직들을 형성해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전에 없이 중요한 일이 되었다.
본서에서는 서아시아, 남아시아,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의 주요 지역에 대한 연대기적 연구를 통해 아시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이토록 광대한 인간사를 다루는 저작의 수준은 필연적으로 입문 강좌 수준의 지식 전달 정도에 그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본서는 일반 독자들에게 아시아를 개관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이것도 여의치 않다면, 적어도 엄청나게 방대한 족적을 남긴 아시아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 되길 빌어본다.
본서에서는 아시아 대륙 여러 민족들의 제각기 다른 역사의 차이점에 주목할 것이다. 다른 대륙 국가들의 역사와의 차이점은 물론이고 말이다. 역사에 획을 그은 인물 몇 명만 살펴보아도 세계사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확고한 입지를 확인할 수 있다. 길가메시, 아슈르바니팔, 조로아스터, 키로스 2세, 붓다는 말할 것도 없고, 아소카, 예수, 사도 바울, 아틸라, 무함마드, 아브드 알말리크, 공자, 진시황, 나가르주나, 주희, 칭기즈 칸, 영락제, 이순신, 히데요시, 샤 압바스, 악바르 대제, 간디, 아타튀르크, 마오쩌둥, 호치민, 수하르토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걸출한 인물들이 각국에 포진하고 있으니 말이다.
고대부터 면면히 이어온 흐름을 지나, 엄청난 다양성을 꽃피웠던 중세까지 아시아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아시아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아시아 대륙은 끊임없이 세계화의 움직임에 적응해왔다는 점이다. 서구열강의 식민주의가 이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온 진화의 촉매 역할을 했다. 그리고 최근 아시아에 드리웠던 검은 손길을 거두어야만 했던 서구세력의 후퇴로 세계의 정치적 지형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하지만 아시아 대륙 역사의 무엇보다 놀라운 특징은 바로 그 장구함이다. 이것은 비단 충격적인 기록의 역사를 보유한 중국만의 특성은 아니다. 지구 최초의 정치체제가 다름 아닌 아시아에서 발원했으니 말이다. 비록 이 고대 국가들의 정치체제의 정교함은 최근 150년간의 고고학 연구 덕에 밝혀졌지만 말이다.
이 책의 저술에 아낌없는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인사를 전하려 한다. 먼저 아시아의 언어로 기록된 문서의 번역에 큰 도움을 준 사랑하는 아내 용 얍에게 감사를 표한다. 다음으로 이슬람 세계에 대해 조언해준 오랜 벗 다투크 흐 하룬 딘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세 번째로 본서의 중세와 근대부분에 실린 1900년대 이전 시대의 방대한 회화 자료와 궁정미술 자료를 제공해준 오랜 벗 그래햄 게스트에게 감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본서에 실린 모든 지도와 삽화 작업을 담당해준 레이 더닝에게도 깊은 감사를 표한다.
1968년 강의실을 언급한 헌정사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겠다. 1960년대에 나는 사라와크Sarawak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행운을 누렸다. 사라와크는 당시 갓 독립한 말레이시아 연방 서북부의 한 주였다. 나는 그곳에서 40여 부족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는 최초의 “백인 라자rajah(왕)”인 제임스 브룩이 남긴 유산이라 할 수 있는, 관대함과 용인의 문화가 깊이 뿌리내려 있었다. 헌정사에 언급한 이 강의실에는 여섯 부족 출신의 학생들이 있었을 뿐이지만, 사뭇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여러 부족의 청년들이 벌인 토론에서 우리는 종종 아주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곤 했다. 난 그 수업에서 수많은 가능성의 존재를 절감했고, 이후에도 그 덕에 아시아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시아 역사에 대한 이 개괄적인 입문서를 통해 아시아 대륙 사람들이 이룩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비슷한 방식으로 조망하고자 하는 또 다른 움직임이 일었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