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순간까지 잔혹한 지략을 발휘한 오기吳起

 

 

 

살처구장殺妻求將은 명성名聲이나 이익利益을 얻기 위해 흉악凶惡하고 잔인殘忍한 수단手段을 망설이지 않고 사용使用함을 비유한 말이다. <사기史記>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이와 관련된 오기吳起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위衛나라 사람 오기吳起는 오자吳子라고 불리며 뛰어난 전략가이자 병법가로 오자병법을 남긴 인물이다. 오기는 어려서 부친을 잃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재산을 탕진해가며 벼슬을 구하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젊었을 적에 공명功名을 얻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으나,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였다. 고향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자, 오기는 자신을 조롱한 사람 30여 명을 죽이고 밤을 틈타 위나라를 도망쳐 나왔다.

그는 고향을 떠나면서 스스로 팔을 물어뜯어 어머니에게 "한나라의 재상을 할 만큼 출세하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는 맹세를 하였다. 그 길로 그는 노魯나라로 향했다. 오기는 노나라에서 증자曾子를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공부했으나, 수학하던 중 어머니의 죽음을 듣고도 미동도 않고 책만 보았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어머니와의 맹세를 거론하였다. 증자는 "그 맹세는 살아생전에 유효한 것이다. 너는 당연 상喪을 받들어 도리를 다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일고도 하지 않자 증자는 그를 수하에서 파문하였다.

이 무렵, 제齊나라의 전거田居라는 대부가 노나라를 방문하였다. 그는 공교롭게도 오기가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여관에 묵게 되었다. 전거는 닷새 정도 묵으면서 매일 열심히 공부하는 오기의 모습을 창문을 통해 바라보게 되었다. 전거는 오기를 불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는, 그가 필시 큰 인물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자신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게 하였다. 전거의 딸은 미인이고 현숙賢淑한 여자였으므로, 오기는 매우 좋아하였다. 두 사람은 결혼 후 매우 좋은 부부가 되었다.

얼마 후, 제나라가 노나라를 침략하게 되자 노나라 목공穆公은 오기를 장군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그가 제나라 대부 전거의 사위라는 점 때문에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 사실을 안 오기는 공명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아내를 죽임으로써 제나라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증명해보였다吳起于是欲就名, 遂殺其妻, 以明不與齊也.

그러나 목공은 오기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여 그를 해임하고 말았다. 이에 오기는 위魏나라로 향하게 되었다. 그 후 오기는 병법을 수학하면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오기는 지위가 낮은 병사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음식을 먹으며 병사의 짐을 나누어졌으며, 한 병사가 등창 때문에 괴로워하자 등창의 고름을 자신의 입으로 빨아주기도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그 병사의 어머니가 슬프게 통곡하자, 어떤 이가 이를 괴이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었다. 그 어머니는 "예전에 오기 장군께서 그 애 아버지의 종기 고름을 빨아 주었는데, 장군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구하려다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내 아들도 장군을 위해 죽을 터인데 어찌 눈물이 안 나겠습니까!" 결국 그 아들은 어머니의 예측대로 오기를 위해 전사하였다.

이후 오기는 여러 나라를 거치며 병법의 대가로 이름을 떨쳤지만 너무 강한 성정으로 인해 끝내 재상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하자 초나라로 건너가 초나라 도왕의 신뢰로 마침내 재상에 오르고 예외가 없는 강력한 법치를 펼쳤다. 도왕이 죽자 그간 원한을 품은 무리들이 그를 죽이려 들자 오기는 도왕의 죽은 시신을 안고 화살받이로 최후를 맞았다. 이어 왕위에 오른 초나라의 숙왕은 법에 의해 부왕의 시신에 활을 쏜 70여 인을 색출해서 참살하였다. 그 법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오기는 죽음의 순간까지 잔혹한 지략을 발휘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