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론이란 무엇인가

칸트의 윤리론과 같은 ‘의무론deontology’에 따르면, 강간이나 살인이나 강도 및 폭행처럼 언제나 옳지 않은 (또는 ‘금지되었거나’ ‘허용될 수 없는’) 형태의 행위가 있다. 이런 행위는 그 행위가 초래하는 결과에 비추어 옳지 않은 것이 아니다. 또한, 그러한 행위가 초래할 좋은 결과를 내세운다 하여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의무론적 견해에서 보면, 이런 행위는 그 자체로 나쁜 행위다. 의무론적 견해는 숱한 도전을 받고 있다. 예컨대, 의무론은 그 이론을 실제 생활의 구체적 사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느냐 또는 사람을 죽이는 특정 행위가 살인에 해당하는지를 어떻게 가리느냐 같은 의문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 밖의 다른 행위와 달리 무엇 때문에 그런 행위를 금지하는지, 어떤 행위를 금지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무론은 대개, 신이 특정 행위를 금하는 법을 제정한다는 도덕 개념과 결합해 있다. 의무론에는 그 밖에도 자연법과 권리론, 적어도 몇 가지 종류의 계약주의론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거기에는 ‘불간섭주의’의 라벨이 붙어 있다. 각 개인의 생명에는 비할 데 없는 가치가 있어서 그 가치에 비추어 각자의 행위에 제약을 설정해야 한다면 당연한 결론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주의론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더 좋은 선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의 생명 역시 희생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결과주의론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가치는 인간을 개인이 아닌 전체로서 다룰 때 비로소 드러난다.
● 결론
2장에서는 왜 어떤 생명에는 가치가 있는지, 또 어떤 생명은 다른 생명보다 가치가 있거나 없는지, 그리고 우리의 행위가 이들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같은 문제를 살펴보았다. 먼저 생명이 신성하다는 견해를 살펴보았다. 이 견해에 따르면, 어떤 생명 특히 인간의 생명은 행동하고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는 고도의 복합적 능력이 있어서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인간적 완성도의 기준이라는 개념을 검토했다. 또한, 이러한 입장이 낙태, 동물 학대 또는안락사 같은 실제 문제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먼저 태아나 동물, 심각한 지적 장애자들에게는 생명의 권리가 없다는 단순한 논리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 견해는 깔끔해보이기는 해도 때에 따라 너무 단순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 견해를 더 적절하게 수정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면서, 미래에 나타날 태아의 발달 잠재력과 과거에 나타난 알츠하이머 환자의 인간 완성도를 참작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 완성도의 기준을 훨씬 낮춰 잡는 것이 도덕적으로 수용할 만한 대안이라는 견해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생명이 신성하다는 사상 자체에 대하여 근원적으로 제기된 비평들을 살펴보면서 이 사상에 깃든 인간중심주의 견해와 의무론적 근거를 검토했다.
● 토의사항
1. ‘편의에 따라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말에 동의하는가? 아니면 죽여도 되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낙태나 안락사가 아니더라도 전쟁이나 사형집행으로 사람을 죽이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또 어떤 의사가 돈을 절약하려고 살아날 수 있는 환자를 돌보지 않기로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2. 인간이 맨 꼭대기에 있고, 동물이 그 아래에, 식물이 다시 그 아래에, 일반 사물이 맨 밑바닥에 있는 ‘도덕적 피라미드’를 생각해보라. 이 장에서 논의한 대로, 이러한 피라미드에 따라 각각의 존재는 다른 능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만물의 맨꼭대기’에 있다는 믿음은 단순히 인간중심적인 생각일까?
3. 육식하는 사람에게 종을 차별한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특히, 일부 사람들이 왜 육식하면서도 심각한 지적 장애자는 먹으려 하지 않는지를 생각해보라. 인간 완성도의 기준에서 볼 때 이런 태도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달리 내세울 만한 더 나은 논리가 있을까?
4. 다음 논의를 생각해보라. 어떤 이는 신생아와 태아가 생명의 권리를 지닌다고 본다. 비록 이들이 현재는 인간 완성도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지만, 달리 방해를 받지 않는 한 온전한 성인이 되어 그러한 기준을 충족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논의의 형식은 세 가지일 것이다. 즉 (가) 모든 X가 Y에 대한 권리가 있다면 모든 잠재력을 가진 X도 Y에 대한 권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 태아는 잠재적으로 온전한 사람이다; (다) 그러므로 태아에게는 생명의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문제가 있다. 즉 (가)는 하나의 일반논리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운전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이들은 시험에 합격하여 자신들의 잠재력을 실현할 때까지 운전할 권리가 없다. 그러므로 잠재력을 내세우는 논리가 통하려면 잠재적인 인간을 온전한 인간으로 대우해야 할 이유를 제시해야만 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논리를 찾아낼 수 있을까?
5. 이 장에서 논의한 시나리오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열아홉 명을 구출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한 명을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스무 명을 다 죽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