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맹姜希孟의 훈자오설訓子五說(삼치설三稚說)

 

 

훈자오설訓子五說이란 자식을 훈계한 다섯 가지 이야기로 도자설盜子說(도둑의 아들), 담사설膽巳說(뱀을 잡아먹음), 등산설登山說(높은 산에 오름), 삼치설三雉說(꿩을 잡는 이야기), 요통설曜通說(오줌통의 이야기)을 말한다.

삼치설三稚說

꿩은 본래 뽐내기를 좋아하고 싸움을 잘한다. 한 마리의 장끼는 여러 마리의 까투리를 거느리고 산등성이나 산자락에서 노닌다. 특히 봄과 한여름은 번식기라서 까투리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면 수놈인 장끼들이 그 소리를 듣고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까투리 곁으로 날아간다. 그럴 때면 사람이 곁에 있어도 두려워하지를 않는다. 그것은 자기가 까투리를 먼저 차지하려는 데 있다. 이런 때에 사냥꾼은 덧을 치고 까투리를 미끼로 잡아매 놓고는 까투리의 울음을 흉내 내며 수놈을 유인한다. 그러면 수놈은 그 죽은 까투리 앞에 늠름하게 선다. 그때 사냥꾼은 미리 설치해 놓은 그물로 장끼를 덮어 씌워 하루에도 수 십 마리씩을 잡는다고 한다.

나는 사냥꾼에게 물어 보았다.

“꿩들의 욕심이 모두 같은가, 아니면 모두 다른가?”

“그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산비탈이나 낮은 산기슭에는 수천 마리의 꿩이 있는데 저는 매일 같이 그곳에 가서 잡습니다. 그런데 어떤 놈은 그물을 한 번 만에 잡을 수 있고, 어떤 놈은 두세 번 만에 잡는 수도 있고, 또 어떤 놈은 처음에 못 잡으면 끝내 못 잡는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제가 나무사이에 숨어서 대나무 통을 불며 미끼 까투리를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면 장끼란 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듣다가 목을 길게 뽑아 바라본 뒤에 땅을 박차고 빠르게 날아옵니다. 주위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런 놈은 한 번에 잡습니다. 이는 꿩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놈으로 화근禍根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대나무 통을 한번 불고 미끼를 한번 움직일 때는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양 있다가, 두세 번 만에야 겨우 마음을 조금 움직여 고개를 뽑고 한동안 망설이다가 열 자쯤 날아올라 공중을 한 바퀴 돌고는 두려운 기색으로 가까이 다가옵니다. 이런 놈은 한 번 그물을 덮어 씌워서는 대부분 도망갑니다. 그리하여 두세 번쯤은 시도한 뒤에야 겨우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런 놈은 꿩 중에 경계하는 마음이 많은, 화를 면하려 노력하는 놈입니다. 그밖에 지팡이 소리만 들어도 놀라서 후다닥 숲속으로 미련 없이 날아가 버리는 놈이 있습니다. 저는 이놈을 굳이 잡아 보려고 날마다 숲속을 헤매면서 온갖 방법으로 유인해보지만 그놈이 사람을 꺼리는 것은 늘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마른 나무 등걸처럼 숨을 죽이고 서서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보았으나 그놈은 욕심이 적고 경계하는 마음이 많아서 좀처럼 가까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뒤로 이런 놈은 대나무 통이나 미끼로는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마디로 이런 꿩은 가장 영특해 화를 멀리할 줄 아는 놈입니다.”

나는 사냥꾼 이야기를 들으며 이것이 족히 세상 사람에게 교훈敎訓을 준다고 생각하였다. 즉 쓸데없는 친구를 사귀고 여색을 좋아하며 남의 충고忠告를 무시하는 자는 부모도 가르칠 수 없고 좋은 친구도 그것을 말릴 수 없어서, 뻔뻔스럽게 나쁜 짓을 일삼다가 결국은 죄를 짓고 감옥에 가게 되지만 그러고도 끝내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으니, 이것이 단 한 번의 그물로 잡히는 꿩과도 같은 무리이다.

또 처음에는 욕망에 눈이 어두웠다가도 화가 두려워 몸을 도사리기는 하지만 주위의 나쁜 친구들이 꾀고 온갖 수단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면 결국 화근에 말려드는 사람이 있으니, 이런 사람이 바로 두 번쯤 그물에 잡을 수 있는 꿩과 같은 무리이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성격이 올곧아 스스로 자신을 자제하고 여색을 멀리하며 욕망에 초연한 사람은 나쁜 친구들이 감히 그의 뜻을 움직일 수 없어 주위에는 좋은 친구들만 있게 된다. 혹시 잘못을 저지르게 되더라도 뉘우치며 날마다 새로워져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데 이런 사람은 그물 같은 것으로는 잡을 수 없는 꿩과 같은 무리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좋은 도구와 훌륭한 기술로 많은 꿩을 잡는 것은 마치 나쁜 친구들이 마음 착한 사람을 유인하여 헤어날 수 없는 곳에 빠트리는 것과도 같다. 그것은 꿩 중에도 대나무와 미끼를 피할 수 있는 놈이 적은 것처럼 사람도 자신의 비위를 맞추어 주고 아첨하는 말을 따르지 않는 자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하거늘 부모로서 자기 자식이 단 한 번의 그물로 잡힐 수 있는 그런 무리가 되기를 원하겠는가? 아니면 평생 잡히지 않는 욕심 없는 꿩과 같아지기를 원하겠는가?

그러니 너희들은 반드시 그런 것을 분별할 줄 알아 소홀히 여기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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