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은 왜 신성할까

 

 

 

 

철학자들은 이런 문제에 부딪힐 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기본적인 문제를 깊이 생각해본 뒤 문제에 다가선다. 우리도 두 가지 문제를 먼저 생각해본 뒤 문제가 되는 상황을 다루어보겠다. 한 가지 질문은 어떤 생명이 내재적 가치를 지니는가(말하자면, 다른 사물의 가치를 압도하거나 자신의 생명에 대한 소유권을 본래부터 지녔는가)다. 정상인이라면 이러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그런데 동물, 뱃속 태아, 지적 장애인, 영구히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은 어떠할까? 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가 있는데, 무엇이 인간의 생명에 가치를 부여하는가다. 예를 들어, 동물의 생명에도 가치가 있는지를 알아보려 할 때 확실한 방법은 인간의 생명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동물의 생명에도 존재하는가를 자문해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생명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이 문제를 먼저 생각해보자.
우리는 너무나 뻔하고 많은 생각을 자아내는 한 가지 사실을 살펴본 바 있다. 인간을 다른 사물을 대하듯 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단순한 습관이나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인간에 대한 특별한 대우를 정당화하거나 요구하는 인간의 특징을 찾아내야 한다. 총 잡은 사내는 이러한 특성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어떤 도덕적 지위조차 누리지 못하는 일반 사물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면서 인간의 생명에만 깃들어 있는 특징을 찾아내야 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생명의 신성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점은 인간에게는 가장 진화한 동물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지적 풍부함과 잠재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에 대한 소유권과 더불어 자신의 행동을 방향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동물은 괴로움과 즐거움, 그리고 그 밖의 느낌을 의식하는 능력이있다는 점에서 식물과는 다르다. 식물은 한마디로 그냥 무시당하며 살다가 시들어 죽고 마는 존재일 뿐이다. 식물에 의식이 있다면 식물에게 나쁜 일일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식물은 명백히 그런 상태를 나쁜 것으로 경험할 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망아지를 학대하면 망아지는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망아지 같은 동물은 식물과 달리 더 좋고 더 나쁜 것을 안다. 스스로 좋고 나쁨을 경험하는 것이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누리는 건 인간도 마찬가지지만, 인간의 생명을 신성시 여기는 이론가들은 단순히 이 사실만으로는 인간의 특별한 능력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사랑에 빠지고, 게임을 즐기고, 연설하고, 나라를 세우며, 자신의 근원을 알고, 신앙에 관해 사색하고, 고기를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생각하고, 그 밖의 여러 가지 행위를 할 수 있다. 인간은 괴로움과 즐거움뿐 아니라 놀라움과 무서움, 기쁨과 자랑, 수치와 죄의식, 질투와 희망 같은 것을 안다. 이런 까닭에 인간은 우주에서 특별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사물에 대한 경험을 쌓고, 동식물과 달리, 더 크고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에 참여할 줄 안다. 더 중요한 건, 인간은 어떤 일에 관해 심사숙고하면서 다른 사물이나 현상을 참작한 뒤 결심할 줄 안다는 점이다. 인간에게는 ‘스스로를 위해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를 제어할 수 있기에 자기 생명에 대한 소유권을 지닐 자격이 있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것이 특별히 나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행위는 복합적이고 경이에 가득 차 있는 것(인간의 생명은 말 그대로 놀라운 존재다. 그에 깃들어 있는 복합성과 능력이야말로 놀라움의 원천이다)을 파괴하는 짓이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없애는 일은(이런 말을 덧붙이려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그 사람의 생명을 제 것인 양 여기는 잘못을 저지르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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