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의 사상은 무엇입니까?

 

 

장자莊子(기원전 369~289년경)의 이름은 주周, 송宋나라 몽蒙 지방에서 태어나 맹자와 동시대에 노자老子의 사상을 계승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노자老子와 마찬가지로 그 실재성은 의심스럽습니다. 전국시대 말기, 도가의 사상가들이 <장자莊子>를 편찬할 때, 이것을 장주莊周에게 가탁假託하여 <장자>라 명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장자>는 공자孔子, 맹자孟子보다 노자와 함께 장자가 존중되기에 이르렀던 한대 초기에, 전국 말 이래의 도가의 논저論著를 부가하여 성립한 것으로서, 통일된 체계는 없지만 도가 사상의 역사적 전개를 볼 수 있습니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장자>가 원래 52편이라고 적혀 있으나 현존하는 <장자>는 33편(내편內編 7, 외편外編 15, 잡편雜編 11)뿐입니다. 전통적으로 장자 자신이 이 책의 내편을 썼고, 그의 제자와 같은 계열의 철학자들이 외편과 잡편을 썼다고 봅니다. 장자 자신이 어느 부분을 직접 저술했다는 명백한 증거는 찾기 어려우나, 내편의 ‘소요유逍遙游’편, ‘제물론齊物論’편, ‘대종사大宗師’편이 장자 자신의 사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현존하는 <장자> 33편 중, 내편 7편이 장자의 저술이며 나머지는 문하생들이 지은 것이라 합니다. <노자老子>가 철학적 시의 형식을 빌리고 있는 데 반해 <장자>는 환상적인 비유와 풍부한 우언, 탁월한 문체로 인해 중국 문인들에게 문학적, 미학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장자는 세상의 만물만상이 무한히 변화 변동하는 도道의 무한한 변화 속에 처해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도를 영원한 생성의 실체로 파악했으며, 도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지식은 단지 상대적인 의미만 가질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자> ‘천하天下’편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장주莊周는 장자의 본래 이름입니다.

 

실제는 항상 홀연히 흘러가니 일정한 형태가 없다. 모든 존재는 무상하게 변화해가는 것이다. 무엇이 삶이고 무엇이 죽음인가? 나는 자연과 함께 가는 것인가? 정신은 어디로 움직여가는 것인가? 그들은 훌훌 어디로 가며, 총총히 어디로 떠나버리는가? 모든 존재는 눈앞에 펼쳐있으되, 돌아갈 곳을 모르는구나! 옛날 도술道術의 이런 면을 장주莊周는 듣고서 기뻐하였다. 그는 터무니없는 환상, 황당하기만 한 이야기, 끝없는 변론으로 때때로 방자하게 사설을 늘어놓지만, 편견을 고집하지 않았고, 한 면만으로 자기를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세상이 더러워서 정중한 말을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리멸렬支離滅裂하여 앞뒤로 사리가 어긋나는 말巵言(치언)로써 변화무궁하게 담론하고, 옛 성현의 말씀重言으로 진실을 믿게 하며, 비유寓言로써 도리를 펼쳤다. 그는 홀로 천지자연과 더불어 정신을 교류했으나, 뽐내어 만물을 경시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옳고 그름是非을 따지지 않고서, 세속에 섞여 살았다. 그의 글은 비록 장대하지만 완곡하여 어그러짐이 없다. 그의 말이 비록 들쭉날쭉하고 괴상해도 읽어볼 만하다. 꽉 들어차있어 끝날 줄을 모른다. 그의 정신은 위로는 천지의 조물자造物者와 함께 노닐고, 아래로는 삶과 죽음, 처음과 끝을 넘어서 있는 자연과 벗이 되는 것이다. 그의 사상은 원대하고 넓으며, 또한 깊고 무한하다. 그의 종지는 조화를 이뤄서 위로 천도天道와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변화에 적응하고 모든 존재를 해석함에 있어서 그의 이론은 무진장하다. 그 이론의 전개는 끝이 없으며 홀홀망망忽忽茫茫하여, 모두 파악될 수 없도다!

 

장자에 따르면, 인생은 유한하나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무한하며, 유한으로 무한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언어, 인식 등은 자신의 관점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내린 결론이 모든 것에 대해 동등하게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주관론은 ‘물고기의 즐거움魚之樂’이라 불리는 다음 유명한 우화에서 보듯이 일종의 감각적 전체론으로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다음은 <장자>의 ‘추수秋水’편에 있는 내용인데 장자의 입장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장자와 혜자가 강둑에서 산책하고 있었을 때,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밖으로 나와 즐겁게 헤엄치니, 저것이 물고기의 진정한 즐거움이겠지.’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는 것을 아는가?’

혜자가 말했다.

‘나는 자네가 아니기 때문에 자네가 무얼 아는지 몰라. 마찬가지로, 자네도 물고기가 아니니, 자네는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네.’

장자가 말했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보세. 자네는 물고기의 즐거움을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지. 이 질문을 했을 때, 자네는 이미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었어. 나는 이 강가에 서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지.’

 

<장자>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는 내편 ‘제물론齊物論’편에 나오는 호접지몽胡蝶之夢입니다. 어느 날 장자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자신은 나비가 되어 꽃밭을 날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꿈을 깨어보니 자신은 장자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순간 장자는 ‘나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장자라는 인간이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고, 이로부터 꿈과 현실을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의미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호접지몽은 도가道家 사상의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가 꾼 이 꿈을 장주지몽莊周之夢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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