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孟子가 그토록 비난한 양주楊朱는 누굽니까?

 

 

전국시대 사상가 맹자孟子(기원전 371~289)는 자신을 논쟁을 좋아하는 호변가好辯家라고 여기는 세간의 평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제자 공도자公都子에게 “내가 어찌 논변을 좋아하겠느냐,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이라고 두 번이나 변명했습니다. 맹자는 자신이 논변을 하는 이유로 두 사람을 꼽으면서 말했습니다.

 

양주楊朱와 묵자墨子(기원전 480?~390?, 이름은 적翟. 그의 행적은 분명하지 않습니다)의 이론이 전국시대에 가득 차 여론이 양주의 이론을 찬성하거나 묵자를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갔다. 양주는 위아爲我(이기주의)를 말하는데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고, 묵자는 겸애兼愛를 내세우는데 이는 자신의 아비를 무시하는 것이다. 자기 아비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 것은 금수禽獸나 하는 짓이다.

 

맹자는 양주楊朱(기원전 395-335)에 대해 “자신의 털 한 가닥을 뽑으면 온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해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서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몰아붙였습니다. 맹자에 따르면 양주는 남을 위해 죽을 일이 전혀 없으며, 특히 나라나 임금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할 줄 몰라 무군無君의 무리라는 것입니다.

맹자가 그토록 비난한 양주의 생존 연대는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겸애설로 유명한 묵자와 맹자가 활동하던 시기에 생존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양주의 사상은 <맹자>, <장자>, <한비자> 등에 의하면, 이미 독립 학파를 이루고 묵가와 대립하여 활발한 논쟁을 벌인 것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중요한 사상의 발전을 평가하여 기술한 <장자>의 ‘천하天下’편과 <순자>의 ‘비십이자非十二子’편에는 양주 사상에 대한 언급이 없어 양주의 사상이 다른 사상으로 극복 혹은 통합되면서 자체의 학술적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음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양주 사상의 핵심은 극심한 사회적 위기의식 속에서 상호간의 불간섭주의와 개개인의 생명의 존엄과 온전함을 추구한 그의 경물중생輕物重生(삶을 중시)에 있습니다. 중생重生은 양주의 사상입니다. 맹자는 양주를 위아爲我, 즉 철저한 이기주의로 소개하고 있지만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책 <회남자淮南子>를 보면 그 사상의 핵심은 전생보진全生保眞입니다. “본성을 온전히 하고 천진함을 보전하며, 바깥의 사물 때문에 몸을 얽어매지 않으려는 것은 양자(양주)가 세워놓은 것이다.” <회남자>는 양주의 이론이 “겸애하고 능력 있는 자를 높이고 귀신을 존중하며 운명을 거부한” 묵자를 비판하면서 나온 것이라 했고, 양주의 이론을 다시 맹자가 비판한다고 했습니다. 양주는 묵자가 지나치게 개인보다 공동체를 앞세우고 있다는 판단 아래 이런 이론을 세웠고, 맹자는 양주가 지나치게 개인을 중시한다고 보아 양주를 비판했습니다. 그러므로 맹자의 입장에서는 양주 사상을 위아주의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그것이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한비자>에 따르면 “바깥의 사물을 가볍게 여기고 삶을 중시한輕物重生”는 것이 양주학파에 대한 당시의 일반적 평가였습니다.

양주의 사상과 노자의 사상은 유사한 점이 있지만 다릅니다. 이름이나 재물보다 목숨을 더 중시하는 중생 사상은 같지만 양주는 본성에 따름으로써 삶을 풍요롭게 하려는 데 비해 노자는 자족하여 생명을 오래 보존하기를 원했습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맹춘기·본생’편에는 입이 달다고 하면 삼키고 쓰다고 하면 뱉는 것, 눈으로 보아 즐거우면 보고 괴로우면 보지 않는 것을 “본성에 이로우면 취하고 본성에 해로우면 버리는”, "본성을 온전히 하全性 도“라 했는데, 이런 도가 양주가 주장한 것입니다. 노자에게는 이런 분방함이 없습니다. 노자가 선택하는 것은 본성의 즐거움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것이었습니다.

<여씨춘추呂氏春秋> ‘정욕情欲’편에 있는 글은 양주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지름길이 됩니다.

 

하늘이 인간을 만들어내니 탐욕이 있고 욕구가 있게 되었다. 욕구에는 진정情이 있다. 진정에는 절도가 있다. 성인은 절도를 닦아서 욕구를 억제하여 진정만을 나타낸다. 진실로 귀가 모든 아름다운 소리五聲를 욕구하고, 눈이 모든 아름다움五色을 욕구하고, 입이 모든 좋은 맛을 욕구하는 것은 진정情이다. 이 세 가지는 귀인, 천인, 우민, 지식인, 현인, 저능인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욕구하는 것이다. 비록 신농神農, 황제黃帝라도 걸桀, 주紂와 똑같다. 성인이 다른 까닭은 그가 진정情을 얻은 점에 있다. 생명生命을 귀하게 보고서 행동하면 진정을 얻게 되고, 생명을 귀하게 보지 않고서 행동하면 진정을 잃게 된다. 이 두 사실이 사느냐 죽느냐. 있느냐 없어지느냐 하는 근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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