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주의자”가 이슬람교를 상대로 벌인 이념의 전쟁

자리샤와 자이바크에 따르면, 유대인이 꾸민 “속임수 계획” 은 “십자군 이래” 줄곧 존재해왔다고 한다. 얼핏 들으면, 사우디 이슬람주의자의 주장을 유대인이 십자군의 배후에 있었다는 말로 혼동할지도 모르겠다. 이를 명쾌히 해두기 위해 십자군 전쟁이 시온주의를 비롯해 팔레스타인을 둘러싼 갈등보다 수십 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과, 그것이 반유대주의적이었다는 점을 언급해야겠다. 자리샤와 자이바크 교수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대인・십자군 음모를 제멋대로 역설해왔다.
여기서 우리는 전통이 아닌 역사를 날조한 사건에 맞닥뜨리게 된다. 사료는 기독교 유럽과 세속 서방세계의 차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서방세계는 르네상스 당시 인본주의와 더불어 출현했다.43 그러나 이슬람주의자들이 꾸며낸 역사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자리샤와 자이바크의 견해에 따르면, “정교분리 사상인 세속성은 십자군 전쟁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못지 않게 유대인의 공로이기도 하며, 이는 유대인의 문헌에 근거를 둔다” 고 한다. 반면, 역사는 유대인이 무슬림과 대등한 입장에서 예루살렘을 수호하기 위해 십자군과 싸웠으며,45 패배 이후에는 심한 학대를 당했다고 전한다. 회당에 숨어 있다가 기독교인들이 지른 불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자리샤와 자이바크 교수는 공저에서 “유대인이 십자군을 선동했다” 고 피력하며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 그 같은 반유대주의적 사상은 유대인을 악마로 만들기 위해 역사를 날조한 다른 이슬람주의 서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두 교수의 주장은 논리가 성립하진 않지만 워낙 흔해서 언급해둔다.
유대인이 이슬람교도를 상대로 벌이는 이념의 전쟁의 일환으로 이슬람교와 동양주의al-istishraq(알이스티슈라크)를 도입하여 “사악한 마스터플랜” 을 실시한다는 주장이 있다. 구체적인 예로 자이샤와 자이바크는 “시온주의는 무슬림이 세계의 유대인에게 저항할 수 있는 단일 블록체제를 조성하지 못하도록 동양주의에 접근했다. … 동양주의 유대인 학자들은 그 분야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 말한다.46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특히 스페인의 경우, 동양주의자들 가운데 유럽계 유대인들이 이슬람교에 낭만적 감성을 불어넣었다. 저명한 정치철학자인 슐로모 아비네리는 언론에 자주 공개한 것처럼 기독교와 세속주의가 공존하는 유럽에서 유대인이 차별받고 있는데, 실은 유대계 유럽의 학자들이 “이슬람교의 미학”을 주창했기 때문이라고 내게도 알려주었다. 이는 버나드 루이스가 지적했듯이 스페인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미국의 역사가 마틴 크레이머의 주장처럼 낭만주의 감성의 중심에 “이슬람교를 발견한 유대인” 이 있었다는 것은 스페인에서 번성한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공생관계” 를 인정하는 대목이다. 또한 크레이머는 이슬람교 연구가 서양 학술계에 통합되는 데에도 유대인이 기여했다고 밝혔다.
유감스럽게도 에드워드 사이드의 추종자들이 합류한 이슬람주의자와 살라피스트들은 “이슬람교가 왜곡된” 주요 원인으로 “동양주의” 를 꼽았다. 이 같은 비판론은 이슬람주의 서적뿐 아니라 미국에서 출간된 이슬람세계 연구서적에서도 볼 수 있다. “동양주의” 를 두고 갑론을박하던, 서방세계의 이슬람 학자들은 그 용어가 아랍어 알이스티슈라크al-istishraq를 영어로 동양주의orientalism로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모르는 것 같다. 오늘날 동양주의 비판론은 젊은 학자의 경력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므로 대개는 진실을 묻어두거나, 불쾌감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 솔직한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자가검열은 전체주의 정권뿐 아니라, 자칭 “학술의 자유를 지향하는 개방된 사회에서 활동 한” 다는 학자들도 자행하고 있다.
사이드가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동양주의Orientalism』를 펴내기 훨씬 전에, 알아즈하르의 부족장인 무함마드 알바히는 “동양주의자”가 이슬람교를 상대로 벌인 이념의 전쟁을 다룬 방대한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그 안에는 “동양주의자” 명단이 수록되었는데, 대개는 유대인들의 이름이었다. 사이드가 “동양주의” 라는 용어를 바히에게서 차용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동양주의 비평이 그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도 사이드는, 바히와는 달리, 제 나름의 “동양주의” 에서 유대인을 간략히 평했으므로 면죄부를 받아 마땅하다.
이번에는 사이드의 긍정적 측면을 적어볼까 한다. 마음이 맞지 않아 나와는 절교를 선언했지만 그의 저작이나 인간성을 비방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친이슬람주의자도 반유대주의자도 아닌 깨어 있는 인본주의자로서, 이슬람교를 연구할 당시에는 유럽중심주의에 적잖이 불만을 느꼈다. 그러나 동양주의 비판론은 추종세력의 손에 들어간 곤봉과도 같았다. 요즘 그들은 정치적 이슬람교에 대한 비판을 단속하며 학계의 경찰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따라서 자리샤와 자이바크 교수가 다음과 같은 글로 정교분리라는 세속주의 사상을 해체하려 할 때 서방세계에서는 불만이 거의 없었다. 세속화는 유대인의 작품이며… 광신적 십자군주의와 가증한 유대교는 이슬람교의 법률학(피크)과는 동떨어진 세속주의 사상을 내놓았다. … 이를 근거로, 숨은 손은 칼리프 제도를 폐지시켰고, 세속 민족주의가 도입한 정교분리를 추구하는 쪽으로 이끌어졌다. 세속 국가 터키를 창시한 케말 아타튀르크는 칼리프 제도를 폐지한 인물로, 그의 문헌은 “내면의 동양주의 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