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陰陽 오행五行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자연현상에 대한 중국 고대인의 최초 사유는 <주역周易>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동시에 가장 난해한 글로 일컬어지는 <주역>은 공자孔子가 극히 진중하게 받들었고 송대의 주희朱熹가 <역경易經>이라 칭하여 숭상한 이래 오경五經의 으뜸으로 꼽히게 되었습니다. <주역>은 상경上經, 하경下經 및 십익十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십익은 단전彖傳 상하, 상전象傳 상하, 계사전繫辭傳 상하, 문언전文言傳, 설괘전說卦傳, 서괘전序卦傳, 잡괘전雜卦傳 등 10편을 말합니다. 한대漢代의 학자 정현鄭玄은 “역에는 세 가지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간易簡이 첫째요, 변역變易이 둘째요, 불역不易이 셋째다”라고 했으며, 주희도 “교역交易, 변역의 뜻이 있으므로 역이라 이른다”고 했습니다. 이간易簡이란 천지天地가 서로 영향을 미쳐 만물을 생성케 하는 이법理法은 실로 단순하며, 그래서 알기 쉽고 따르기 쉽다는 뜻이다. 변역變易이란 천지간의 현상, 인간 사회의 모든 사행事行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뜻이고, 불역不易이란 이런 중에도 결코 변하지 않는 줄기가 있으니 예컨대,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며 해와 달이 갈마들어 밝히고 부모는 자애를 베풀고 자식은 그를 받들어 모시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복희씨伏羲氏가 팔괘八卦를 만들고 신농씨神農氏가 64괘로 나누었으며, 문왕文王이 괘卦에 사辭를 붙여 <주역>이 이루어진 뒤에 그 아들 주공周公이 효사爻辭를 지어 완성되었고, 여기에 공자가 십익十翼을 붙였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십익이란 <주역> 중에서 경문經文(점의 원전原典)을 이론적, 철학적으로 해석한 책을 말하며, 십익이란 경문을 돕는다는 뜻으로 경문의 해석을 말합니다.
음양설陰陽說과 오행설五行說은 원래 독립되어 있었으나 대략 기원전 4세기 초인 전국시대戰國時代에 결합되기 시작하여 여러 가지 현상들을 설명하는 틀로 사용되었습니다. 제齊나라의 추연騶衍이 체계적으로 결합시켰다고 전해오나 입증할 만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대漢代에 이르러 두 관점이 하나의 정합적인 이론으로 통합된 건 확실합니다. 어원으로 보면 음陰, 양陽이라는 두 문자는 각각 어둠과 밝음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음陰이라는 글자는 언덕 구丘와 구름 운雲의 상형象形을 포함하고 있으며, 양陽이라는 글자는 모든 빛의 원천인 하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상호보완적인 힘이 서로 작용하여 우주의 삼라만상을 발생시키고 변화, 소멸시키게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음양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4∼3세기에 편집된 듯한 <국어國語>의 ‘주어周語’편에 나타나 있습니다. 주周나라 태사太史 백양보伯陽父의 지진에 대한 설명으로 양기陽氣가 숨어서 나오지 못하면, 음기陰氣가 눌려서 증발할 수 없으므로 지진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주나라 유왕幽王 2년에 서주西周 세 강의 유역에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백양보가 말했습니다.
“주나라는 이제 망할 것이다. 천天의 기氣는 위에 있고 땅의 기는 아래에 있으니 본래 각각 그 정해진 자리가 있어 뒤바뀌지 않는 법이다. 그 위치가 뒤바뀌었다면 그것은 사람에 의해 그 질서가 어지럽혀진 때문이다. 양기陽氣가 밑에 엎드려 있어 빠져나가지 못하고 음기陰氣가 위에서 그것을 압박하여 증발하지 못하면 이에 지진이 발생하게 된다. 지금 세 강 유역에 지진이 발생했으니 이는 양기가 제자리를 잃고 음기에 의해 압박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기가 제자리를 잃고 음기의 자리에 있으니 샘의 근원이 반드시 막히게 될 것이다. 그 근원이 막히면 나라가 반드시 망하게 된다. 물이란 흙을 적셔 백성이 그것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물이 흙을 적셔주지 않으면 흙은 생산할 수 없게 되며 백성은 궁핍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지 망하지 않을 것을 기대할 것인가? 옛날 이수伊水(허난성河南省 뤄양洛阳의 남쪽을 흐르는 강)와 낙수洛水(섬서陝西, 하남河南의 두 성省을 흐르는 강)가 말라 하夏나라가 망했으며, 황하黃河가 말라 상商나라가 망했다. 지금 주나라의 정치하는 모양이 바로 하나라, 상나라 말년과 비슷하며, 그 샘의 원천 또한 막혀 있다. 샘의 원천이 한번 막히면 강물도 반드시 마르기 마련이다. 국가는 산천에서 그것에 소용되는 물자를 공급받는다. 산이 무너지고 강이 마르는 것은 나라가 망할 징조인 것이다. 강물이 마르게 되면 산은 반드시 붕괴된다. 주나라가 멸망하기까지는 10년이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10년을 1기紀라 하는데, 천天이 어떤 나라를 멸망시키려 할 때에는 1기를 넘기지 않기 때문이다.”
백양보가 말한 그해 서주의 세 강이 모두 말랐고 기산岐山이 붕괴되었습니다. 유왕幽王 11년에 유왕이 섬서성에 살던 오랑캐 견융犬戎에게 살해당하니, 서주는 멸망하고 주나라는 낙읍으로 동천東遷햇습니다.
문왕文王이 천명天命을 받은 지 13년에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방문했습니다. 기자의 이름은 서여胥餘로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멸망시키자 기자는 동쪽으로 도망하여 조선의 왕이 되어 조선의 백성들에게 예의, 양잠, 방직, 8조법금 등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고려 중엽 평양에 기자묘箕子墓를 찾아 사당을 세웠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때부터 기자에 대한 숭배사상이 심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평양에 기자릉, 사당, 비석 등 유적이 있는데, 모두 고려, 조선시대에 설치한 것입니다.
기자를 방문한 무왕이 말했습니다.
“아, 기자여! 하늘은 은밀히 백성을 돌보셔서 그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해야 그 밝은 질서를 세상에 바르게 펼칠 수 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기자가 말했습니다.
“제가 들으니 옛날 곤鯤(<장자莊子>에 나오는 큰 물고기)은 홍수를 다스림에 제방을 쌓아 막는 방법을 씀으로써 오행五行의 질서를 어지럽혔습니다. 상제가 이에 크게 노하여 그에게 홍범구주弘範九疇(세상을 다스리는 아홉 가지 큰 법)를 주지 않았으므로 그는 밝은 질서를 어떻게 펼쳐야 할지를 알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곤이 유형당하여 죽으니 그의 아들 우禹가 그 직위를 계승했습니다. 천이 그때 비로소 우에게 홍범구주를 내렸으므로 우는 밝은 질서를 세상에 펼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