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후사이니는 종교의 권위자 겸 아랍 민족주의자였다

 

 

 

알후사이니는 종교의 권위자 겸 아랍 민족주의자였다. 그래서 이를 혼동한 몇몇 학자들은 그의 신원을 정치적 이슬람교와 결부시켜 왔다. 비록 그가 이슬람교 법전 전문가(무프티)로 활동했지만 사상은 이슬람주의가 아닌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에 뿌리를 두었다. 근대 이슬람주의자라면 알후 사이니처럼 나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거나 정치 지도부에 굴복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범아랍식 반유대주의와 이슬람교식 반유대주의의 차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연속성은 단절 뒤에 온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알후 사이니를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의 과도기적 인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937년 말, 베를린에서 알후사이니는 이슬람교와 유대인에 대하여 이슬람주의적 관점으로 논쟁을 벌였는데, “이슬람교식 반유대주의” 라는 전통을 꾸며낸 장본인 중 하나가 바로 그였다.
범아랍 민족주의19는 세속 이데올로기이자 유럽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아랍세계에 국한된 건 아니다. 민족주의자들은 세속 아랍 민족으로서 보편적인 무슬림 공동체를 정치적 실체로 간주하려는 사상을 버렸다. 이슬람주의자들의 생각대로, 음모보다는 시류를 포용하기 위해 그런 것이다. 미합중국도 그랬지만, 아랍 민족을 한 국가로 통일하려는, 범아랍 민족의 비전은 민족의 근간에 달려 있다. 범아랍주의에 비아랍 무슬림이 포함되지 않는 까닭은 그들에게는 종교적 성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범아랍주의자들과는 달리, (자말 알딘 알아프가니를 비롯한) 초기 범이슬람주의자들은 모든 무
슬림을 단일 칼리프 제국으로 통일한다는 이데올로기를 표방했으나, 무슬림 공동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면서까지 칼리프를 확장하지는 않았다. 그런 면에서는 범이슬람주의와 범아랍주의는 닮았다. 2장에서 논했듯이, 이슬람주의 체제인 신이슬람 질서nizam Islami(니잠 이슬라미)는 서방세계가 주장하는 칼리프 체제보다 근대적이면서도 훨씬 범위가 넓다.
제프리 허프가 『아랍세계를 향한 나치 선전Nazi Propaganda for the Arab World』(2009)에서 밝혔듯이, 범아랍 민족주의자들은 나치로부터 반유대주의를 배운 셈이다. 나치 독일은 프랑스를 점령할 당시 반유대주의 사상을 중동에 적극 유포했다고 버나드 루이스에게 직접 들은 적이 있다. 또한 버나드 루이스는 비시 정권이 시리아 등의 프랑스 식민지를 나치에 개방한 탓에 나치 독트린이 아랍세계에 전파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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