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덕이론이 왜 필요할까

흔히 인간은 자유를 누리려면 도덕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본능적으로만 행동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에게는 버릇과 관습과 체질적 반응이 있다. 그리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행동하게 일깨우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만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종종 지금 하는 일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인간의 행위에는 정당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다만 욕구 때문에 이러한 일을 할까? 아니면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하니까 그저 습관으로 할까? 아니면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을까? 우리는 자신의 습관이나 체질적 반응에 따라 행위를 멈추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목적을 추구해야 할지, 어떤 이상을 그려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윤리 연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윤리는 개인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려는 고민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견해를 남들 앞에서 정당화하거나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왜 내가 그런 방식으로 행동했는지 끊임없이 묻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까닭에 행위가 특별하거나 기대 이상이거나 의미심장한 결과를 가져왔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인간은 남들을 이해시키며 살아가는 존재다. 인간이 지닌 근원적인 동기 중 하나는 남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할 여지가 있게 행위를 한다는 점이다. 사람들 앞에 떳떳하게 서서 자신의 행위가 옳았음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행위는 하지 않으려 한다. 윤리학은 어떤 행위가 남들이 하나하나 따져보더라도 진실로 변호할 만한 행위인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 말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른다. 아니면 철학자들이 ‘보통 사람’은 자신을 인도할 윤리이론이 나타날 때까지 무지함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할 때처럼 조금은 거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물론 얼마만큼의 ‘도덕적 상식’이 믿을 만한지에 관해서는 철학자들마저 의견이 분분하다.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의 상식을 도덕적 사고의 받침돌이자 출발점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오로지 도덕적 상식에만 의존하면 혼란에 빠지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도덕적 상식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평범한 일상의 문제들을 다룰 때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안락사나 낙태 그리고 핵무기를 허용할지에 관해 마음을 정해야 할 대목에 이르면 상식적인 도덕관념으로는 감당하기가 벅참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자신이 믿고 의지해온 도덕적 직관을 연장하여 새로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알아야 한다.
도덕적 상식에 의존할 때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분명한 해답을 말해주기 어렵다는 점이다. 도덕의 문제는 (일단 우리가 일상의 상식을 뒤로할 때) 심각한 의견대립의 근원이 된다. 도덕철학은 의견대립의 근원을 밝혀내는 동시에 그러한 대립을 없앨 원칙을 찾아내 대립을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윤리가 필요한 또 하나의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몸담은 사회의 성격에 있다. ‘목가적 사회’에서 산다면 모든 사람이 ‘자신이 사는 곳을 잘 알고’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의문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살만한 사회가 아직도 몇몇은 존재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동질사회와 달리 우리 사회에서는 도덕적 의견이 불일치할 때가 잦으며, 다양한 생활양식을 선택할 수 있고, 신념체계 또한 다양하다. 어떤 이가 지적한 대로, 우리는 도덕적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는 까닭에 왜 다른 것을 제쳐놓고 이런 생활양식을 선택했는지 자신에게나 남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불확실성을 피할 수 있든 없든 이렇듯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서 상식만으로는 길을 찾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남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충분히 설명하는 것을 아예 포기하지 않는 한, 이러한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야 한다. 따라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욱 포괄적인 견해를 지녀야만 한다. 또한, 그에 비추어 우리가 직면한 일들을 심사숙고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늘 그렇게 해 왔다’는 구실을 내세워 행위를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품은 의문을 끝까지 추적해야 비로소 왜그래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제기될 모든 의문에 만족스러운 설명을 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먼 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갈 길은 이것뿐이다. 이런 문제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저주를 받은 것이다. 더는 단순히 전통적인 해답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