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주의의 쇠퇴”는 그릇된 개념이다


 

 

이슬람주의를 테러로 비하하거나 폭력과 결부시킨다면— 언제든— “이슬람주의의 쇠퇴” 를 운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샤리아국가의 창설과 이슬람식 세계질서라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원리주의의 본질을 간과했다는 방증이다. 정치적 이슬람교의 평화와 폭력성— 쿠틉이 뒷받침한— 은 목표가 아니라 “이슬람세계의 혁명”을 일으킬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다르다. 이 이데올로기가 부상했다는 것은 이슬람문명이 근대성과 다원주의 아래 민주적 평화에 합류할지, 이슬람교식 해결책(알할 알이슬라미)을 지지해야 할지 선택해야 할 갈림길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4년 12월 쓰나미의 여파로 곤경에 처한 무슬림을 위해 서방세계가 보낸 동정 어린 관심으로 몇몇 무슬림은 포위된 이슬람교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서양을 원수가 아닌 서로 돕는 동반자로 만났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싱가포르에서 이처럼 훈훈한 감정을 직접 체험했다. 그러나 아체Aceh 특별구의 이슬람주의자들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현지에 샤리아질서를 강요하기 위해 쓰나미를 역이용하기도 했다. 또한 이슬람주의가 내세운 이원성— 이슬람세계와 서방세계 중 택일해야 한다는 흑백논리— 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세계정치의 새로운 역할을 종교에 부여하는 반서양식 개발의 일환으로 이슬람주의자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세속성을 탈피한 사회” 사상은 이슬람세계에서 식을 줄 모른다.
서방세계(특히 유럽)가 대체로 보편주의 기독교에서 탈기독교사상으로, 세속적 근대성에서 포스트모던 문화의 상대주의로 이행하면서 이슬람교의 보편주의는 세력을 모으는 동시에 크게 변모하고 있다. 이슬람교의 정치화는 비교적 평화적인 이슬람교의 보편주의를 세계의 혁명에 대한 요구로 바꾸어놓았으며, 질 케펠의 『이슬람주의의 종말fin de l'Islamisme』이나 올리비에 로이의 “포스트이슬람주의” 에서 내놓은 예측은 모순점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이슬람주의 운동가는 무슬림 사이에서는 소수이지만, 바로 이들이 여론을 자극하는 강력한 다국적 조직체를 구성한다. 이슬람교 원리주의자들은 유럽 소수집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소수 이슬람주의자들의 세력과 그들의 정체성 정치를 간파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유럽을 “이슬람주의의 전쟁터” 로 적절히 빗대었다.60 이슬람세계와 서방세계 그리고 유럽의 이슬람교 소수집단으로 구성된 삼자에 이슬람주의가 빠지면 곤란하다.
이슬람주의 연구는 숱한 걸림돌에 부딪쳤다. 이슬람주의자들은 그들을 비판하는 논객들에게 외국인혐오증이나 이슬람혐오증을 덮어씌우는가 하면, 그들 나름대로의 분석법을 강요하기 위해 선전수단을 적절히 활용하기도 했다. 사실, 이슬람혐오증이나 “동양주의”는 여기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이슬람주의를 다양한 종교적 원리주의로 이해하거나 이슬람주의 사상이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표상이라며 이를 비판하는 서양 학자들은 거의 없다.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유대인이자 원리주의에 정통한 어네
스트 겔너는 이슬람교의 원리주의를 분명히 비판할 용기를 발휘했다. 1994년 5월,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겔너와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가 정면충돌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최상위에 둔 겔너는 신절대주의neo-absolutism의 도전에 맞서 계몽사상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종교적 원리주의는… 다수에게 정신적 만족을 주며… 오늘날에는 이슬람교 전통 안에서 설득력과 영향력을 겸비했다” 고 밝혔다.61 암스테르담에서 그와 기어츠는 계몽사상의 보편성(이를 “계몽 원리주의” 라고 비하하는 잘못된 평도 있다)과 기어츠가 지지한 문화의 상대주의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62 “타자의 문화적 특수성” 을 존중해야 한다는, 기어츠의 주장에 겔너는 “그럼 히틀러주의도 “독일인의 특수성” 이라며 존중하겠느냐” 고 되받아쳤다. 그러자 기어츠는 적절치 않은 사례라며 이를 무시했다.
겔너-기어츠 논쟁을 짚어보려면 먼저 “다원주의의 한계” 와 문화의 상대주의에 대한 겔너의 비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슬람주의는 절대론으로 다원주의, 근대성 중 한 가지의 입장도 수긍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슬람주의는 민주정치를 이룩하려는 의욕이 없는 데다, 민간 이슬람교와도 대립하고 있다. 혹시라도 그것이 득세하는 날에는 이슬람세계와 유럽의 소수집단에 암흑기가 도래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반대론자와는 달리, 겔너는 문화의 상대주의가 이슬람주의식 신절대주의의 대응책으로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이슬람주의가 꿈꾸는 샤리아국가는 주권국가의 베스트팔렌 시스템에 연합될 수 있는 정치질서가 아니다. 물론 이슬람주의식 신절대주의에 대하여 이 시스템을 지지한다고 해서 이를 유럽중심주의라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아 펠드먼을 비롯한 법학자들은 외관상 입헌주의를 인정한다는 이유로 샤리아국가 사상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집필한 문헌에 정통하고 아랍 문헌을 읽는 전문가라면 그들이 국민 주권이나 주권국가가 채택한 근대 국제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베스트팔렌 질서 가운데, 그 어느 편에도 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슬람주의의 샤리아국가 이데올로기는 알라 신의 통치(하키미야트 알라) 원리에 중점을 두며, 기존의 베스트팔렌 질서를 대체할 이슬람교식 세계질서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감안하고도 이슬람주의를 수용하겠는가? 혹자는 이슬람주의자들도 언젠가는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들이 이슬람주의식 질서 개념을 버린다면 그것이 긍정적 조짐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이슬람주의자일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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