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기억으로서의 전쟁

 

 

존 켈세이는 이슬람세계와 서방세계의 가치관 갈등에 정통한 서양 학자들 가운데 하나로, 이슬람주의의 “이념의 전쟁” 을 세계정치로 전환된 집단기억으로서의 전쟁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집단기억은 현대 이슬람식 향수의 근원, 즉 찬란한 이슬람 역사를 상기시키고 현재의 세계질서를 둘러싼 폭력을 조장하며, 이슬람주의가 천명하는 “역사의 귀환” 의 근거가 된다. 특정 기억은 “구조를 갖추었으나” 역사 자체는 그렇지가 않다. 이슬람주의는 실제 역사의 기억을 되살려, 종교에 근거한 신세계질서를 확립한다는 허상을 부추겨왔다.
이슬람주의가 조성한 집단기억은 근대에 서방세계가 부상하기 훨씬 전에 태동한 이슬람의 제국주의 역사를 조명한다. 중세시대에 이슬람문명이 팽창한 것은 일종의 세계화와 관계가 깊은데, 특히 정치질서를 부여한 점에서는 세계에 확산된 “이슬람교 지지사상” 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교 원리주의는 성전의 기억을 되살린다. 이 같은 보편적 이슬람교 지지사상은 아랍 무슬림이 7세기 이후 이슬람문명을 확대하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성전54에 첫발을 내디딘 때부터 형성되었다. 결국 이슬람교는 “국제
질서” 를 갖춘 “국제문명” 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아랍은, 중세시대 때와는 달리, 세계를 이슬람 지지사상의 범세계화에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다. 이슬람 칼리프가 세계질서로는 부상하지 못했으나, 아랍이 쇠퇴한 이후 떠오른 튀르크Turks는, 산업혁명의 여파로 정치력・경제력과 “산업화 전쟁” 이 서양에 집중된 17세기까지 이슬람 팽창정책을 지속시켰다. 바로 이것이 이슬람주의가 되살리고 있는 역사인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 지하드가 쇠락한 원흉으로 기독교와 서방세계 및 “유대인의 모략” 을 꼽는다. 사이드 쿠틉은 이슬람 통치 아래 평화와 번영을 이룩할 세계의 혁명을 주문했는데, 여기에는 유대인과의 투쟁57도 해당된다. 유대인도 세계를 지배하고 싶어 할 테니 이슬람교와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슬람주의는 단순한 테러리스트 지하드운동도, 이슬람교도 아니다. 물론 유럽의 전체주의가 계몽사상에서 비롯되었듯이, 이슬람주의 또한 이슬람교에 기원을 두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문명사의 복귀를 염원하는 이슬람주의의 이상은 이데올로기가 몰고 간, 역사의 박해와 “이방” 문화의 충돌을 대변한다. 이런 점에서 이슬람교는 인도나 중국보다 서방세계에 도전장을 내민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방인을 “역사가 없는 민족” 으로 치부했던 서양인을 경멸하기 위해 집단기억을 조성한다. 서방세계의 오
만에 맞선 이슬람주의자들은 인권과 민주정치 사상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긍정적인 업적에도 반감을 표시하고 있다. 반서양주의와 반미주의 및 반유대주의의 골은 심히 깊다. 정치적 종교와 문명화된 집단기억은 정체성 정치의 표식으로 이용될 때 문명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될 뿐 아니라, 비무슬림을 타자화하는 이슬람주의식 도구로 전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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