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팔렌 질서 VS 정치적 이슬람교의 국제주의

 

 

 

베스트팔렌식 논리에 근거한, 기존의 국제 시스템을 가르쳐온 나는 국제관계 분야의 명예교수로서 주권 민족국가의 세속 제도에 대한 나의 소신을 밝히면서도 그러는 것이 동양주의적 표현인지, 혹시 유럽중심주의적 표현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왜 베스트팔렌식 논리가 이슬람주의가 꿈꾸는 세계질서에 더 나을까? 종교화에 맞서 세속적 세계질서를 변호해야 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에 답변하려면 역사적 맥락에서 이를 비추어보는 데 신중해야 할 듯싶다. 종교와 세속적 세계관의 경쟁은 오늘날의 논쟁이긴 하나 원류는 역사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이슬람문명은 7~17세기40까지 지하드의 정복활동으로 세계의 주요 지역들을 장악했으나 서방세계의 부상으로 이슬람세계의 패권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서양의 “군사혁명” 41은 이슬람교의 팽창정책을 막고 이를 유럽식으로 대체했다. 서방세계가 개발한 대부분의 근대 과학 및 기술은 현 세계질서가 서양식 기준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을 말해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은 대개 유럽 열강의 식민지였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주권 국가로 재부상했다. 그러나 주권이 유명무실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구식민지는 외형상 민족국가로 발전하여 합법적으로 근대의 국제 시스템에 편승했고, 그로부터 국가기관(민주적으로 이상적인)을 근대화하고 육성하기 위해 “개발” 에 돌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항상 계획대로 된 건 아니었다.
인도를 비롯한 소수의 성공 사례를 제외하고는 개발 위기와 세속 민족국가의 정당성 위기라는 이중고를 감내해야 했다. 이슬람문명은 이 과정을 피하지 못했다. 탈식민지화가 진행될 당시 이슬람세계는 민족국가의 국제 시스템에 편승함으로써 새로운 국제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했으나, 서방세계의 근대화 모델이 이슬람권에는 통하지 않았다. 오늘날 17억 인구로 이루어진 상상 속의 무슬림 공동체인 평화의 집(다르 알이슬람)은 여러 민족국가들로 쪼개진 구이슬람 제국의 역사적 기억을 상징한다. 실패한 개발에서 비롯된 위기는 정치색을 띤 종교의 귀환으로 이어졌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 같은 이중고에 대한 해결책을 아젠다로 규정하면서 이슬람교의 영광에 얽힌 기억을 되살리고, 그들이 꿈꾸는 신세계 질서는 과거를 회복하는 것임을 천명하며, 이슬람교의 과거를 안내하는 근대사를 읽는다. 일부 전문가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들은 칼리프가 아닌 질서(니잠)를 말한다. 그렇다면 이슬람문명을 저해한 개발을 이슬람주의자들이 되돌리고 싶어 하는 것이 잘못인 까닭이 무엇일까?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전개된 반식민지운동은 유럽과 유럽식 규칙을 거부했으나, 반식민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위르겐 하버마스의 “문화적 근대성”에 근간을 둔 유럽의 정치적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 사상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구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들은— 지긋하지 못해서 실패하는 사례가 잦았지만— 대체로 베스트팔렌 질서의 근본적인 신념인 국민 주권과 국민의 통치 및 시장경제의 타당성을 받아들였다. 반면 서방세계에 맞선 이슬람주의자들은 서양의 패권과 가치관을 모두 거부했다. 그들은 문화적 근대성이 서방세계의 패권주의에서 분리될 수 있는 보편성에 일조한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모든 문명을 동등한 기준으로 보는 범세계적 시민 사회를(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인정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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