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이슬람 영토권

 

 

 

이슬람주의자들의 발상에 따르면, 유럽은 이슬람 영토권dar al-shahadah(다르 알샤하다)으로 간주된다. 샤하다란 이슬람교의 신앙고백으로, 알라 신께 순복하고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을 일컬으며, 이슬람교의 다섯 기둥 중 첫 번째에 해당하고, 정치적 논쟁이 아닌 이슬람교의 신앙과 관계가 깊다. 다르 알이슬람을 다르 알샤하다로 수정한 인물이 타리크 라마단이다. 이 개념은 이슬람교의 확장을 가리키며 이슬람주의 프로젝트의 일환28으로 유럽을 재편하려는 야심을 담고 있다. 라마단은 이슬람 영토권을 유럽에 적용29함으로써 2,300만 무슬림 이민자를 위해 이슬람교의 “반체제 문화” 를 제안했다. 이는 무슬림 이민자들을 유럽 시민에 통합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들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슬람교도들의 종족화를 염두에 둔 계획이었다.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이슬람교를 핵심에 둠으로써 범세계적 다원주의와 민주적 평화사상과는 상충한다. 그러면 세계를 향한 이슬람주의의 비전에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보자.

 

정치: 정교일치(딘와다울라)라는 개념은 이슬람교를 신의 영감을 받은 국가질서를 규정한 정치적 종교로 해석해야 할 것을 요구한다.

법: 이슬람주의가 재창조해낸 샤리아는 이슬람법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코란이 뜻하는 도덕성과 이슬람법의 전통 개념(이혼과 유산 등)을 모두 벗어난다. 이슬람 정치를 샤리아로 다스린다(6장에서 구체적으로 다룰 것이다)는 것은 신정질서를 추구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제2의 샤리아는 고전적인 것과는 달리, 하나로 통합된 국법을 의미한다.

문화: 모든 무슬림이 단일 무슬림 공동체(움마)를 구성한다는 가정은 베네딕트 앤더슨이 (민족주의 맥락에서) 단일 문화를 공유한다는 “상상 속의 공동체” 를 반영한다. 이처럼 꾸며낸 문화는 이슬람의 국제주의 이데올로기의 근간이 된다.

무력: 성전(지하드)의 전통적인 이슬람교의 개념은 샤리아처럼 재해석되어— 꾸며낸 전통과도 관계가 깊다— 코란과 전통적 의미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신개념 지하드는 규칙이 통하지 않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지하드운동(지하디야)에 가깝다. 이 이데올로기의 폭력은 단순한 테러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비정규전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다시금 언급하지만, 종교가 종교화된 정치의 탈을 쓰고 공공영역에 귀환한 것은 이슬람교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범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슬람교의 이데올로기는 여느 종교적 원리주의보다 세계의 정치에 중요하다. 전통적인 보편주의를 종교적 토대 위에 제기된 새로운 국제주의로 옮기는 데 이슬람주의가 다른 원리주의보다 더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9・11테러 사태 이후 에드워드 사이드가 그랬던 것처럼 “발광하는 폭력배” 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슬람주의는 팔레스타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릇된 서양식 정치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신세계질서를 추구하는 세력이다. 이는 아랍 및 이슬람세계의 구조적・규범적 위기에 매우 깊이 내재되어 있다.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와 그 역사적 배경을 분석해보면 독트린 그리고 의미의 맥락에서 종교의 규범적인 기능이, 위기에 대한 특정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사회적 측면(사회적 실체로서의 종교)을 결합한 경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환원주의적 접근법은 이 이데올로기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유익함이 없다. 이슬람주의자를 “정치적 인간” 으로 규정하여 세속적 운동가라고 하거나, 이슬람
주의가 이슬람교답지 않은 데다 종교를 집권의 구실로 이용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영국 내무부장관인 재키 스미스가 2008년에 지하디스트를 “반이슬람교도” 라고 규탄한 바와 같이— 어폐가 있다. 사회적 맥락에서 이슬람주의를 유추하기란 불가능하다. 사회적 환경에 관심을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종교화된 정치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특히 사회 변화의 원인에 근거해서 정치적 이슬람교를 분석할 경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사회 변화의 원인이 유도하는 문화와 종교, 이데올로기 및 세계관이 사회적・경제적 변화의 원인으로 축소되어서도 안 된다. 문화 및 종교가 제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건 요지가 될 수 없으므로, 이슬람주의의 종교 및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분석의 핵심에 두어야 마땅하다. 그래도 “문화가 관건”이라는 점은 재차 밝혀두어야겠다. 물론 정치적・사회적 불만이 종교와 문화에 표출된다면 이 또한 그 나름대로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정치적 이슬람교는 1928년에 창립되어 1966년, 이집트 관리의 암살 혐의로 사이드 쿠틉이 처형되기까지만 해도 주변 조직에 불과했다. (팔레스타인의 이슬람주의는 예외적인 사례로 3장에서 논할 것이다) 그러다가 1967년 이집트와 요르단 및 시리아가 이스라엘과의 6일전쟁에서 참패하자 중차대한 순간이 찾아왔다.30 즉 패전으로 아랍세계에 정당성의 위기가 닥치고, 세속주의는 쇠퇴한 반면 이슬람주의의 종교화된 정치가 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집트의 나세르를 비롯하여, 시리아와 이라크의 바스당Ba'thist 지도부 등, 세속 민족주의자들은 퇴진할 수밖에 없었다. 동포에게서 신뢰를 잃은 그들은 배신자로 전락했다.
이슬람주의는 초기 본거지인 이집트에서 기동세력으로 두각을 나타냈다.31 현지에서 이슬람주의 사상은 패배한 정권의 대안으로 이슬람교식 해결책(알할 알이슬라미)을 제시하며 수니파세계 전역에 확산되었다. 여기서 “해결책” 의 뜻은 아랍세계뿐 아니라 이슬람세계에도 적용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세속주의를 반대하는 이슬람주의32는 쿠틉의 정신적 후계자인 이집트인 유수프 알카라다위가 주창한 것이다. 오늘날, 그는 세계에 송출되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슬람교 법전 전문가(무프티)로서 어느 때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유수프 알카라다위를 “온건파” 로 규정하는 서양인은 자신을 기만하고 있다. 카이로와 베이루트에서 출간된, 알카라다위의 삼부작 『이슬람교식 해결책의 필연성Hatmiyyat al-hall al-Islami』은 영향력 면에서 쿠틉의 『진리를 향한 이정표Signposts Along the Road』에 견줄 만하다.
일부 서양 논객들(올리비에 로이 같은)에 따르면, 이슬람주의자들이 서방
세계의 가치관을 거부한 건 이슬람교와는 무관하며 단지 세계화와 관련된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라는데, 이는 세속주의 정권의 쇠퇴를 오해한 것이다. “서방세계에 대한 반란” 33과 서양식 가치관에 대한 반란이 핵심을 이루었다. 이슬람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현지의 세속 정권을 축출하는 건 신세계질서를 이룩하기 위한 첫 단계일 뿐이다. 이슬람교 원리주의자들의 좀 더 원대한 목표는 세속적인 세계질서와 서방세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알카에다의 진술과 행위를 보면 우주적 세계관을 읽을 수 있다. 빈라덴의 근본적인 종교적 원류에는 하산 알반나와 사이드 쿠틉이 있다. 혹자의 주장과는 달리, “민주정치” 와 “지하드운동” 의 대결구도를 설정해둔 것은 서방세계가 아니다. 즉 정치적 이슬람교는 이념의 전쟁(하릅 알아프카르) — 쿠틉이 언급했듯이 신앙(이만)과 불신앙(쿠프르)이 충돌한 세계전쟁— 을 스스로 개시34했다. 하릅 알아프카르는 테러전술에 의존하지 않는 범세계적인 지하드를 일컫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