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죽음을 거쳐야 한다

폴의 심리치료
폴은 길에서 화가 치미는 일을 겪은 후 나를 찾아왔다. 그는 처음에는 화내는 습관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화내는 것이 옳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했다. 그는 사람들과 관계가 소원해지고 친구들과도 멀어졌으며 또 갑자기 실직하는 일이 잦았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그는 자신의 성격이 문제가 됨을 깨닫기 시작했다.
치료의 성과는 수개월 동안 진전과 후퇴를 반복했다. 폴은 어떤 때는 화내는 행동이 문제가 많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또 어떤 때는 왜 사람들이 자신이 화를 낼 때 부정적으로 반응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화를 낼 때 스스로 강하다고 느껴져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화를 내면 마치 자신의 상처받기 쉬운 여리고 예민한 감정과 그 이면에 깔린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보호받는 느낌이었다. 그는 화내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으며 자신이 불의를 봐도 그냥 지나치는 소심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좋았다. 그는 언젠가 화내는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 죽음과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화내지 않는 것이 두려웠다. 화내지 않으면 자신을 특별하게 해주는 제일 큰 장점을 포기해야 하는 것처럼 느꼈다. 결국 그는 실제와 허구의 불의에 맞서 스스로 강하다는 느낌에 집중했던 화를 내는 자신의 죽음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이 끝인 동시에 시작임을 알았다. 폴은 이런 자신의 죽음이 자신과 남을 위해 여전히 불의에 맞서면서도 아무 때나 중무장하고 칼을 빼 들어 덤비지 않는 침착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변화가 죽음과 같다는 느낌은 많은 형태들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 자신의 편협했던 신앙심이 이제는 도움이 되지 않으며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한때 자신에게 위안을 줬던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일도 일종의 죽음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자신을 유물론자로 여기던 사람들도 때로는 무의식중에 자신의 삶에서 영적인 면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사람들은 이전에 자신이 받아들였던 전통적인 성 역할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에는 옛날 방식은 시대에 뒤떨어지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는 일종의 슬픔이 담겨 있다. 낡은 사고의 틀에 집착하고 자신을 가두면 자신을 배반하는 느낌이 든다. 70대 중반쯤 되면 이런 사실을 마흔 살 때 발견
했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하며, 마흔 살 먹은 사람은 스무 살 때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한다. 그러나 이런 발견은 일찍 하건 늦게 하건 그 과정에서 일종의 죽음을 거쳐야 한다. 이제 과거에 순응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낡은 방식에 집착하지 말고 시야를 넓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