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질서를 추구하는 이슬람주의

 

 

 

이슬람주의는 폭력이 아니라 정치질서를 둘러싼 사상이라는 점을 다시금 주지시키고 싶다. 폭력은 지하드운동의 부수적 측면에 불과하다. 이슬람주의는 종교를 이야기하지만 그 사상은 정치적 지배 주변을 맴돈다. 신정질서의 근간이 바로 이슬람주의의 기본 특징이다. 그렇지만 나는 정치적 이슬람교를 부흥과 결부하는 데는 회의적이다. 이슬람교가 예로부터 정치의 적법성을 결정・주장하는 수단이 되어 왔더라도 이슬람주의는 이 영역에서 새로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주의가 세상을 재편하려는 정치적 노력의 일환이라면 이를 종교적 각성운동으로 간주하는 건 잘못이다. “신성한 종교의 귀환”— 일반적인 세속화를 지적한 막스 베버의 가설을 반증하기 위해 사회학자 대니얼벨이 지어낸 개념— 으로 알려진 범세계적 현상은 대개 정치색을 띠고 있다. 종교의 정치화는 출처가 분명치 않으나 그 기원을 근대화와 맞닥뜨릴 때 빚어진 위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유럽과 이슬람주의의 전체주의가 각각 위기에서 태동했다는 점을 감안하여 그 둘을 대등한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이슬람주의의 경우, 막강한 서방세계에 비해 개발이 부진했고, 근대화와 진보주의가 이슬람세계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으며 무엇보다도, 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참패한 후 세속 지도자들의 위신이 흔들린 탓에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게다가 이슬람주의는 문화적 근대화 개념과 가치관을 강력히 거부하며 기술적인 의미에서 근대화의 자질을 나치주의 및 공산주의와 공유했다. 미국의 사학자 제프리 허프는 나치가 근대 기술은 수용한 반면, 문화적 근대화는 거부한 점을 지적하기 위해 “반동적 모더니즘reactionary modernism” 이라는 용어를 지어냈다. 비교 정도는 괜찮지만 이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히틀러 집권 당시 독일은 세계적인 선진 산업국가들 가운데 하나였으나 현재 이슬람세계는( 이를테면 문화연구 프로젝트가) “개발도상 문화” 에 기초한 사회들로 규정한 국가들로 이뤄져 있다.
이슬람주의의 탈을 쓴 이슬람교의 귀환은 신앙이 아니라 정치적 권리가 가미된 종교의 귀환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슬람교 신앙은 쇠퇴한 적이 없으나, 1924년 칼리프 제도가 폐지되고 무슬림세계 전역에 세속 민족국가가 부상한 이후로는 정치적 타당성의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았다. 정치적 이슬람교는 종교적・세속적 실험에 연이어 실패한 후 대안으로 이슬람교가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적 이슬람교는 근대화를 수용하기는커녕 그 가치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했다. 그럼에도 이슬람주의자들은 전통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근대식 가치관과 합리주의적 세계관을 강력히 거부했지만 과학기술의 근대식 수단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양면성이 바로 원리주의의 주요 특징이다.

“신성한 종교의 귀환” 은 세 가지 쟁점과 관계가 깊은데, 이를 이슬람교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슬람교는 국가질서를 위한 정치적 수단이 아니라, 무슬림의 생활양식과 세계관을 규정하는 문화적・종교적 제도다. 이슬람주의의 정교일치(딘와다울라) 사상은 이슬람교 자체라기보다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주요 경계를 표시하는 특징임이 분명해졌다. 세계에 확산된 근대화에 대응하기 위해 창출된 전통은 이슬람세계 전역에 만연한 “근대 이슬람교의 위기” 로 태동하게 된 것이다.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위기를 맞지 않았다면 국가사회주의도 없었을 것이고, 이슬람세계에 위기가 없었다면 이슬람주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이슬람주의는 다양한 종교적 원리주의로서, “다중적 근대성” 을 운운하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근대화의 또 다른 양상이라기보다는, 그것이 대표하는 조직(8장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만큼이나 전체주의의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민주적 시민 사회의 허울을 두른다고 해서 전체주의 조직을 민주적인 것으로 바꿀 수는 없다.
셋째, 샤리아의 맥락에서 성취된 듯싶은, 민주정치의 이슬람주의화는 전체주의 질서를 위장한 것일 뿐이다. 이슬람주의의 신정질서 개념은 국민 주권뿐 아니라 정치적 제삼자의 입지를 인정하는 민주적 다원주의도 거부한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진정한 신자와 불신자라는 이분법적 기준으로 사고한다.
나는 이 책 후반에서 이슬람주의가 “열린 이슬람교” 를 일컫는 진보주의와 본질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역설할 것이다. 민주적 다원주의를 포용할 수 있는 윤리적 기반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슬람교를 연구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종교적 원리주의” 라는 용어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으나 나는 이 책에서 원리주의 개념을 분석 도구로 계속 활용할 것이다. 물론 그 용어가 이슬람혐오증을 일컫는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다. 원리주의 프로젝트는 이 현상이 전 지역에 출현한 경위를 중립적으로 연구하는 데 토대를 둔다.
원리주의 프로젝트는 종교를 신념이 아니라 사회적 실체로 간주하는 방법론적 접근법을 구사했다. 종교를 사회적 실체로 이해하는 것은 에밀 뒤르켐의 종교・사회학 이론에서 비롯되었다. 종교의 정치화가 사회적 사실이라는 점에서 이는 종교적 원리주의 이데올로기가 창출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열성파나 정통파, 혹은 극단주의적 신념을 동의어로 쓰지 않고 그렇게 정의한다면 “원리주의” 라는 용어가 유용할 뿐 아니라 폭넓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원리주의가 기독교에 국한되지 않고, 이슬람교나 유대교와 같이 경전을 둔 종교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재차 강조한다. 모든 유일신 사상에는 종교적 정통성과 종교적 원리주의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종교적 정통성이 순수 전통주의라면, 후자는 구조와 수단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문화적 가치관에 기초를 둔, 범세계적이고도 보편적인 근대화의 맥락에서 비롯된 근대적인 현상이다. 원리주의자들이 모두 그렇듯, 이슬람주의자들도 근대화를 배격하면서도 근대화에 젖어 있다. 즉 그들이 주장하는 이슬람교의 각성al-sahwa al-Islamiyya(알사화 알이슬라미야)은 이슬람식 근대화의 꿈을 일컫는다.
또한 “이슬람교의 각성” 은 꾸며낸 전통에 의존하기도 한다. 19~20세기에 이르기까지 무슬림세계에서는 범이슬람주의 운동가 자말 알딘 알 아프가니에게서 영감을 얻은 문화의 부흥주의가 존재했다. 부흥주의자인 알 아프가니는 이슬람주의자가 아닌 데다, 성스러움에 기초한 정치질서에는 관심도 없었다. 다만 반식민지 운동의 일환으로 “제국주의에 대응” 하기 위해 이슬람교를 재건하고 싶어 했을 뿐이다. 오늘날, 하산 알반나의 손자인 타리크 라마단은 알아프가니와 그의 조부22를 잇는 영속성을 주장하면서
이슬람주의의 정치적 종교와 이슬람교의 부흥주의를 혼동하고 말았다. 이슬람주의자인 알반나는 부흥주의자가 아니었다. 결국 둘의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라마단의 노력은 잘못된 것이므로 그릇된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
이슬람주의는 종교적 부흥주의가 아니다. 사실, 이슬람주의가 종교에 근간을 둔 정치질서를 추구한다고는 하나 정교일치에서 유추한 것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이슬람 경전에는 그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다. “국가(다울라)” 는 코란이나 무함마드의 언행이 기록된 정경인 하디트hadith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신이슬람 질서” 와 “이슬람 정부hukuma Islamiyya(후쿠마 이슬라미야)” 도 마찬가지다. 이는 이슬람 전통이나 경전에 쓰인 평범한 용어가 아니다. 이슬람주의의 추종자들이 지어낸 용어가 전통의 부흥사상과 조화를 이루기가 어렵다는 데서, 부흥주의자인 알아프가니와 이슬람주의자인 알반나의 주요 경계가 그어진다.
이슬람주의자가 주창하는 “이슬람국가” 에 본질을 부여하는 개념이 바로 샤리아의 시행tatbiq al-shari'a(타트비크 알샤리아)인데, 샤리아를 극단적으로 재해석하면 결과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슬람교에서 샤리아에는 다양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23 샤리아는 코란 본문에 단 한 차례 기록되었으며, 사전적인 의미는 “물가로 이어지는 길a path leading to water” 이란 뜻으로 바른 길을 가리킨다. 여기서 “바른 길” 이란 의례 및 도덕적으로 바른 행위를 일컫는다. 그러나 이슬람교를 이슬람주의식 샤리아로 다스리자는 것은 정치적 요구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코란에는 없으나 총체적인 법률 개념을 위해 고안된 샤리아 전통을 꾸며냈으니, 이는 종교적 르네상스도, 고전적 샤리아의 부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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