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지의 지혜

어느 날, 선禪을 공부하던 어린 제자가 노선사에게 죽은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물었다.
"난 몰라” 하고 노선사가 말했다.
제자가 놀라서 “하지만 스승님께서는 선사가 아니십니까!” 하고 외쳤다. 노선사가 말했다.
“그래, 나는 선사지만 망자가 아니란 말이다” .
불교의 단순하고 직접적인 성격에 따라(특히, 선불교는 그런 성격이 더 강하다) 이 노선사는 제자에게 진실을 말했다. 죽은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지만 제자의 질문은 여전히 중요했다. 그 해답을 안다면, 죽음뿐만 아니라 삶도 두렵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불교의 가장 큰 선물은 두려움이 없음이다. 우리가 죽은 후에 어떤 일을 겪을지 알지 못하는데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죽음이 두렵지 않은 척하거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피해버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이 두려워서 거부한다면 우리의 의식은 왜곡되고, 인정하려 하지 않겠지만 긴장과 불안이 생겨날 것이다인간으로서 우리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우리는 삶을 인식하는 생명체인 동시에 삶의 한계를 인식하는 생명체이기도 하다. 무한성에 대해 숙고하고 영원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이 유한하고 일시적임을 알고 있다. 인간은 이런 식으로 의식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동물이다. 인간의 유한성과 무상함으로 생겨나는 질문에 대해 기꺼이 숙고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들이며, 그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으면서 교회에 나가거나 겉으로만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영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이 처한 상황의 진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삶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행동한다. 죽음을 부정한다면 부, 특권, 즐거움, 권력 따위에 집착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죽을 때 “넌 가지고 갈 수는 없어” 하고 말하기는 하지만 죽어도 반드시 가져갈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삶이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부, 특권, 즐거움, 권력 따위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것들은 나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충실한 삶을 사는 데 방해가 되므로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한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재산을 모으는 것은 인간이 처한 상황과 그 한계를 인정하기 싫을 때 흔히 사용하는 전략이다. 사람들은 부유해짐으로써 특별함을 느끼려고 한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이런 자만심에 빠져 있다. 흔히 다른 사람들은 머지않아 늙고, 병들고, 죽게 될지 모르지만, 나만은 예외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우리가 정말 그런 불행에서 예외라면 우리가 그런 최초의 인류일 것이다. 현재 살아 있고 활력이 넘치는데,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 꾸며낸 이야기나 허튼 생각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피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란 점을 이해하기는 정말 어렵다. 죽음과 세금 외에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지만, 이 말에서도 죽음을 궁극적인 문제로 다루기보다 세금처럼 단순한 골칫거리로 과소평가함을 볼 수 있다.
특별함이 죽음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첫 번째 왜곡이라면, 이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두 번째 왜곡도 있다. 우리는 스스로 특별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왜곡을 이용한다. 유명 인사에 대한 환상은 이런 속임수에 의해 나타난다. 우리는 유명 인사들의 삶에 환상을 품고 있어서 이들을 마치 올림포스의 신이나 여신처럼 여기고 이들의 행운과 불행, 음주운전과 불륜 같은 사건을 쫓다 보면 우리도 불멸의 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