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陰陽五行
음양오행陰陽五行은 생명의 부호로서 이 부호모형이 생명의 원형에 대한 모사(模寫)이자 묘사(描寫)이다. 음양오행은 중국의 역대 현인들이 장기간의 관찰과 사고, 고도의 추상과 개괄을 통해 창조해낸 문화 부호이다.
음양(陰陽)의 관념은 대략 상고시대의 농경시기에 나타났다. 은주(殷周) 시대 사람들은 “음양을 살펴야 한다.”는 경험을 총결했다. 가장 일찍 음양의 관념을 기재한 것이 『주역』이다. 『주역』은 대략 서주(西周) 전기에 성립되었는데, 64괘의 부호계통과 64괘의 문자계통 즉, 64조(條)의 괘사(卦辭)와 386(條)의 효사(爻辭)로 구성되어 있다. 『주역』의 가장 기본적인 부호는 효(爻)이며, 효에는 단지 __과 -- 두 가지만 있을 뿐이다. 비록 『주역』에서는 그것을 직접 음효(陰爻), 양효(陽爻)라고 부르지 않았고, 심지어는 음양이라고 두 자를 이어서 말하지도 않았지만, __과 -- 부호는 상고시대 선철(先哲)의 음양 관념을 반영한 것이다.
춘추말년에 이르러 음양 관념은 상당히 성숙해졌을 뿐 아니라 널리 쓰이게 되었다. 『국어國語』 「월어하越語下」에는 월나라의 대부인 범려(范蠡)가 월왕 구천(勾踐)과 음양을 써서 천시(天時)와 인사(人事)를 논한 내용이 실려 있다. 춘추전국 시대는 제자백가가 쟁명하던 시기였다. 당시 유가, 도가, 묵가, 법가, 병가, 잡가는 모두 보편적으로 음양의 개념을 사용했다. 노자(老子)는 음양을 철학의 범주로 끌어올린 최초의 철학자였다. 전국시기에 음양을 전문적으로 논하는 음양가(陰陽家)가 출현했다. 추연鄒衍(기원전 305~240, 맹자보다 약간 늦게 등장하여 음양오행설을 제창했다)을 대표로 하는 음양가는 단지 음양학설과 오행학설을 융합했을 뿐만 아니라 음양오행으로 계절의 변화와 농작물의 생장을 해석하고 왕조의 교체와 정치의 흥망성쇠를 풀었다. 추연은 최초로 음양설과 오행설을 결합시켜 음양소장(陰陽消長)의 원리로 오행의 운동변화를 설명함으로써 음양오행설을 구축했다. 아울러 오덕종시(五德終始, 혹은 오덕전이(五德轉移)설을 제기하여 오향상승의 과정으로 사회역사의 발전을 해석했다.
오행설(五行說)은 은상(殷商) 시대에 출현한 사방(四方)의 관념에서 유래했다. 오행(五行) 개념은 대략 주나라 시대에 나왔다. 춘추시대에 오행의 상승(相勝) 학설이 출현했고, 전국시기에 오행의 상생(相生) 학설과 오행과 음양의 배합 학설이 나왔다. 이대 오행은 이미 일종의 우주모형이 되어 광범위하게 운용되었다. 한나라 시대에 이르러 음양오행은 신성하여 고칠 수 없는 세계관과 방법론이 되었다. 한나라 시대에는 음양오행학설이 널리 퍼지고 신학화(神學化) 되는 시기였다. 한무제(漢武帝) 때 동중서(董仲舒, 기원전 179~104)는 음양오행을 자연현상에 대한 인식모형에서 도약하여 사회정치를 설명하는 수단으로 변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