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주의와 정치질서

이슬람주의가 이슬람교의 전통을 꾸며내기 위한 첫 단계는 이슬람교를 정교일치din-wa-dawla(딘와다울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민주정치가 아니라 기
존의 정치질서를 재편하여 이슬람식 샤리아국가를 추구할 목적으로 이슬람교식 해결책al-hall al-Islami(알할 알이슬라미)을 운운한다. 이 같은 사상이 바로 이슬람주의의 특징이자 필수요건이다. 이슬람주의가 명실상부한 이슬람교를 가늠하는 시금석으로서 정교일치와 샤하다(알라 신께 순복하고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를 거의 동등한 토대로 삼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무슬림이 이슬람주의자인지 확인해보고 싶다면 “이슬람교가 종교입니까, 국가의 질서입니까?” 라고 물으라. “국가의 질서”라고 대꾸하면 그를 이슬람주의자로 생각해도 좋다. 미국과 유럽에서 내놓은 정치적 이슬람교 관련 논문을 읽다 보니 분석가들이 대부분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들은 이슬람주의를 “급진파 이슬람교”로 축소하는가 하면, 그것이 이슬람국가의 질서를 추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도 했다.3 이슬람국가에 대한 개념이 폐기되어야만 “포스트이슬람주의”를 거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의 여섯 가지 기본 특징을 분석하려면 정치질서에서 출발하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국가의 정치 이데올로기
이슬람주의를 연구하는 데 가장 유익한 정보원으로 이슬람주의자들이 집필한 책들을 꼽을 수 있다. 영국계 파키스탄 운동가인 마지드 나와즈는 해방당(히즙 우트타리르)의 지도부에서 활동하다가 지하운동이 발각되어 이집트에서 4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후 나와즈는 이슬람주의에 항거하기 위해 퀼리엄재단the Quilliam Foundation을 창설했다. 저서에 따르면, 그는 이슬람주의는 신학이 아니라 정치적 이데올로기임을 역설했다. 즉 이슬람주의자들이 “이슬람국가를 수립하려는 야심”을 품고 이슬람교를 정치화했다는 이야기다.
신이슬람 질서(니잠 이슬라미)를 확립하는 것은 점진적 절차 중 첫 단계에 해당된다. 이슬람주의가 세계적인 논쟁거리가 된 까닭은 세계질서를 창출하기 위해 이슬람국가를 확대시킨다는, 비전의 두 번째 부분 때문이다. 이슬람주의의 범세계적 혁명은 지역적인 국가의 정치질서를 재편하고 세계의 재창조를 지향하는 것이다.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 역시 고유의 독트린을 공공연히 세계에 유포한다는 보편적인 사명을 띤 종교다. 이슬람주의는 이슬람교의 보편주의를, 주권 민족국가의 세속질서를 이슬람주의 질서로 대체한다는 정치적 국제주의로 바꾼다. 이런 점에서 이슬람주의는 공산주의 독트린과도 비슷하다. 지구촌에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했던, 마르크스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대신 이슬람주의식 국제주의는 꾸며낸 무슬림 공동체(움마)를 제시한다. 이슬람주의가 내세우는 무슬림 공동체는 이슬람교의 전통 움마와는 달리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국가의 엄격한 샤리아를 찬동하는 정치조직에 가깝다.
이러한 아젠다를 기술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를 코란이나 기존의 고전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슬람교의 샤리아5에 근간을 두었다고는 하나, 좀 더 면밀히 조사해보면 국가와 세계질서를 재창출한다는 이상은 고전 이슬람교의 샤리아 전통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꾸며낸 전통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종교와는 무관한 주권국가가 베스트팔렌 질서의 핵심이듯, 샤리아국가도 이슬람주의 질서의 초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두 세계질서는 서로 양립할 수가 없으므로, 이슬람주의의 신세계질서가 다원주의 질서에 수용될 수 있으리라는 발상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슬람주의가 다른 국가 개념과 다원주의 사상을 노골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즉 이슬람주의는 오늘날의 민족국가 개념을 전혀 다른 것으로 대체할 목적으로 기존의 세계질서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무근의 허풍이 아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이 목표를 달성할 역량은 부족하나 정국의 혼란을 일으켜 국가의 무질서를 유도할 수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