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로서의 이슬람주의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규명하는 이 책의 여정은 이슬람주의를 전체주의로 규정하는 데서 막이 내릴 것이다. 혹자에 따르면, 이슬람주의라는 정치색을 띤 종교는 이슬람문명이 위기를 맞았을 때 재기할 방편을 마련했다고 한다. 어느 사회든 위기를 만나면 민주주의를 선택하든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에 취약해지는 등 다양한 진로를 걷게 되는데, 이에 대해 나는 8장에서 이슬람주의가 이슬람세계를 후자로 이끌었다고 역설할 것이다 .
이란 이슬람공화국을 제외하면, 아프가니스탄의 축출된 탈리반 정권과 AKP가 집권한 터키, 이라크와 레바논 및 팔레스타인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전반적인 정치행동의 일환이나— 크나큰 비중을 차지할 때도 더러 있었다. 이 책에서 나는 샤리아국가를 확립하려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운동에 중점을 두었다.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연구하면 이슬람주의가 다원적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있다는 견해를 뒷받침할 수 없으므로 나는 비폭력 이슬람주의를 민주화의 견인차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논객과는 입장이 다르다. 한나 아렌트의 이론을 바탕으로 이슬람주의를 살펴보면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동력이라기보다는 최신판 전체주의에 좀 더 가깝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슬람주의자들이 중동 국가에서 정권을 쥔다는 점 자체가 자국에는 심각한 재앙인 셈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교가 해결책al-hall huwa al-Islam(알할 후와 알이슬람)이라는 기치를 내걸지만 단언컨대, 이슬람교는 해결책이 아니며, 그것이 권위주의 정권의 통치와 개발을 둘러싼 위기를 정치적으로 해결해줄 수도 없다. 그들은 당면과제(개발과 경제, 정권의 정당성 및 문화적 소외)는 제대로 지적하나 대책으로는 샤리아국가의 구색을 갖춘, 전체주의적 통치를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성전을 감행하든, 선거를 치르든, 집권하게 되면 사회문제를 해결할 입장은 못 될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이란과 마찬가지로— 기껏해야 정국안정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이란조차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탄압하고 있다. 별 의미는 없지만 공식적인 선거를 치르는 이란에서도 “이슬람식 민주주의” 가 아니라 새로운 전체주의가 권력을 쥐고 있다.
그렇다. 기존의 전체주의 정권은 개발과 민주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안이 필요하지만 이슬람주의는 적절치 않다. 현 정권을 종교화된 정치에 근거한 체제로 대체하려는 발상은 폐렴을 독감으로 바꾸려는 것과 같다. 구체적인 사례로 이라크를 꼽을 수 있는데, 이라크 역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한때 부시 행정부는— 중동뿐 아니라 이슬람세계를 통틀어— 이라크를 민주화의 본보기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이슬람주의자들을 권좌에 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어야 했다! 즉 이라크의 민주화를 위해 부시 정부가 내세운 “중동구상” 은 실패작이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주장하려는 이슬람주의 및 이슬람교의 차이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대외정책과 관계가 깊다. 단순한 시사문제를 떠나, 나는 이슬람교가 근대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 끊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슬람주의를 조명하기 위해 라이벌인 미 행정부를 자주 거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