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주의자들의 세계관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

19세기 초와 20세기 중엽 사이, 이슬람세계는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서양식으로 변모했으나 이 발전 모델은 대개 실패로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화와 세속화가 상당히 앞당겨졌다. 반면, 이와 대립되는 순결회복운동은 진정성의 이름으로 실시되었지만 전통의 재건보다는 꾸며낸 전통에 더 가까울 듯싶다. 상실한 진정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근대화에 주입된 것처럼 말이다.
서방세계와 이슬람교는 정복과 문화 차용의 역사를 공유하는데, 이처럼 긍정적인 유산은 이슬람주의자나 서양인 할 것 없이, 문명의 충돌이라는 선전에 집착하는 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부흥해야 할 것이다. 혹자는 중세 헬레니즘을 근대 서양화와 비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알다시피, 이슬람문명은 중세의 이슬람이 헬레니즘과 조우했을 때 번영하기 시작했는데, 중세의 헬레니즘과 비교해보면 근대의 서양화는 그보다는 덜 성공한 것 같다. 세계화의 여파에 대항하는 이슬람주의는 문명의 조우와 문화 차
용을 서방세계의 패권주의와 혼동하고 있다. 서방세계에 대한 이슬람세계의 반란은 서양화에 대한 문화적 봉기로 풀이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서양문화의 대안으로서 이슬람 문화를 보전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문화적 근대화를 서양의 패권주의와 혼동하지 않는다면 반란이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서방세계에 대한 반란” 이 서양식이거나 유대식이면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게 된 경위는 무엇일까? 안와르 알준디를 비롯한 이슬람주의자들은 “서양화 아젠다” 를 일컫는 타그립taghrib 배후에 유대인의 모략이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진정성을 둘러싼 투쟁은 반미주의와 반유대주의가 결합한 순결의 아젠다로 규정된 것이다. 반유대주의의 이슬람화 정책은 이슬람주의를 논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의 사고방식에서는 문명 교류의 융성과 문화 차용에 대한 전통
을 배격한다. 본질에는 익숙하지 않고 문화적 진정성을 높이 평가하려는 포스트모더니스트라면 이러한 역사를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이슬람주의가 전통 이슬람교와 얼마나 다른지 모르기 때문에 비무슬림 문화에 대해서 늘 열린 마음을 표방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