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두臣蘇塗의 삼경三京 오부五部 제도
단재 신채호는 소도의 제단 앞에서 맹세를 올리는 젊은이를 선비(선인)라고 불렀는데, 이들 젊은이는 그 씨족을 보호하고 그 씨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를 맹세하는 씨족의 정예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태종 때에는 국가 행사에서 수두교도들의 무술, 가무, 사냥 등에서 우수한 자를 선인이라 했으며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학문과 기술로 그 지위를 얻었다고 합니다. 선배 혹은 선인(先人 혹은 仙人)은 조의를 입고, 수두교도들은 허리에 조백을 두르고 다녔다고 하여 조의 또는 조의선인早衣仙人이라고 합니다. 화랑은 원화源花라는 여성에서 비롯되어 나중에 좋은 가문의 청년 중에 덕행 있는 자를 곱게 치장하여 화랑으로 만든 것에서 보듯이 외모와 몸치장을 중시하여 여성적인 반면 선배는 매우 남성적입니다. 선배의 독특한 외양 때문에 고구려와 전쟁을 치렀던 수나라, 당나라의 병사들은 이들을 승군僧軍으로 착각하기도 했습니다.
조의선인은 선비제도라는 특별한 교육체계에 의해 양성되는 문무겸전의 인재들입니다. 이들은 대체로 유년의 어린 나이에 선발되어 신체발달에 부응하는 매우 정교한 지적, 정서적, 신체적 훈련과 교양을 통하여 보다 완벽한 심신의 능력을 갖게 됩니다. 조의선인은 누구보다도 사물과 현상을 깊이 인식하고, 그것들이 부딪치는 문제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며, 이를 해결할 심리적, 물질적 능력을 갖도록 조련됩니다. 을파고나 명령답부, 을지문덕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도 모두 조의선인들이었고, 우리 문화전통에서 말하는 선비란 바로 이들이 가지고 있는 덕성과 실천력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신채호는 수두蘇塗는 신수두臣蘇塗의 대신단大神壇을 본받아 각 지방에 만든 신단神壇으로 마을마다 남아있던 당산堂山의 당집, 신목神木 등은 그 유물들이라고 했습니다. 대제에 모든 사람을 모아 칼로 춤을 추게 하고 혹은 활도 쏘며, 혹은 깨금질도 하고, 혹은 택권(택견)도 하며, 혹은 강의 얼음을 깨고 물 속으로 들어가 물싸움도 하고 혹은 가무歌舞를 연演하여 아름다움과 추함美惡을 보며, 대수렵을 행하여 그 잡은 양의 많고 적음을 보아 그 내기에서 승리한 사람를 선배라 칭하고 선배된 사람에게는 국가에서 녹祿을 주어 그 처자를 먹여 가실家室에 누累가 없게 했습니다.
온달과 평강공주에 보면 온달은 3월3일 낙랑언덕에서의 사냥대회에서 1등을 함으로써 선배로 뽑힙니다. 선배가 된 사람은 각기 편대를 나누어 한 집에서 먹고 자며, 앉으면 고사故事를 외우고 학예를 익히며 나가면 산수를 탐험하거나 성곽을 쌓거나 도로를 닦고 군중을 위하여 강습講習하거나 일신一身을 국가와 사회에 바쳐 모든 어려움을 사양치 않았습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대단군大壇君 왕검王儉이 삼신三神, 오제五帝의 신설神說로서 우주의 조직을 설명하고, 그 신설에 의해 인간 세상 일반의 제도를 정함에 있어 ‘신한’과 ‘말한’, ‘불한’의 세 ‘한’을 세워서 대단군이 ‘신한’(진한辰韓)이 되니, ‘신한’은 곧 대왕大王이고 ‘말한’(마한馬韓)과 ‘불한’(변한卞韓)은 곧 좌우의 양 부왕副王으로서 ‘신한’을 보좌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순서대로 말하면, ‘말한’(마한)이 ‘불한’(변한)을 낳고 ‘불한’이 ‘신한’을 낳았으나, 권력의 순위로 말하면 ‘신한’(진한)이 신의 세계와 인간 세계의 대권을 다 잡고 ‘말한’과 ‘불한’보다 고귀해졌습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삼경三京’을 두어 세 ‘한韓’이 나뉘어 주재했으며, 세 ‘한’의 밑에 ‘돗가, 개가, 소가, 말가, 신가’의 다섯 ‘가’를 두고, 전국을 동, 서, 남, 북, 중 ‘오부五部’로 나누어 다섯 ‘가’가 중앙의 다섯 국무대신이 되는 동시에 오부를 나누어 다스리는 다섯 지방장관이 되고, ‘신가’는 다섯 ‘가’의 우두머리가 되며, 전시에는 오부의 인민으로써 중, 전, 후, 좌, 우의 5개 군軍을 조직하여 ‘신가’가 중군대원수中軍大元師가 되고, 기타 네 ‘가’가 전, 후, 좌, 우의 네 원수元師가 되어 출전했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유행하는 윷판이 곧 다섯 ‘가’의 출진도出陣圖이다. ‘도刀, 개介, 걸乞, 유兪, 모毛’는 곧 이두자로 쓴 다섯 ‘가’의 칭호이니, ‘도刀’는 ‘돗가’이고, ‘개介’는 ‘개가’이며, ‘유兪’는 옛날 음古音이 ‘소’이므로 ‘소가’이고, ‘모毛’는 ‘말가’이며, ‘걸’은 ‘신가’이니, 걸로서 ‘신가’를 적은 것은 그 의의를 알 수 없으나, 부여시대에 ‘견사犬使’란 관명이 있는데 대개 견사는 ‘신가’의 다른 이름이므로 ‘걸’은 곧 견사의 ‘견犬(개)’을 의역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돗, 개犬, 소牛, 말馬 등 축류로서 다섯 방위의 신의 이름을 삼고 동시에 이로서 관직명을 삼은 것은, 이때 와서 수렵시대가 이미 지나가고 농목시대農牧時代가 되었다는 증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