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최초를 개척한 부여扶餘
원시인들이 강에서 어류를 잡고 들에서 짐승들을 사냥하고 숲에서 열매를 채취하여 살다가 인구가 번식하자 식료의 부족을 느껴 목축업과 농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농업은 대개 불을 이용하여 초목을 태워서 전야田野를 개척한 뒤에 비로소 시작되었으므로 우리나라 고어에서 야지野地를 ‘불(=벌)’이라 했습니다.
불을 발견한 것은 혁명이었습니다. 불의 발견은 근대의 전기電氣의 발견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불을 발견했으므로 전야를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굴속에 있는 맹수들을 불을 이용하여 쉽게 죽일 수 있었습니다. 가죽을 부드럽게 하여 옷이나 신발을 만들 수 있었으며, 진흙을 구워 그릇과 벽돌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집을 짓고 성벽을 쌓았으며, 나중에는 불로 쇠를 달구어 기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지혜를 계발啓發시켜준 것은 불이었습니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에서 “우리 조선에서는 불을 사랑하여 사람의 이름을 ‘불’이라 지은 경우도 많은데 부루夫婁, 품리稟離 등이 다 ‘불’의 음역이다. ‘불’이라 지은 지명도 적지 않은데 부여扶餘, 부리夫里, 불내不耐, 불이不而, 국내國內, 불弗, 벌伐, 발發 등이 다 ‘불’의 음역이다”라고 했습니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고기古記』,『고사기古事記』 등을 참고하면, 조선 문화의 원시原始 ‘수두’의 발원은 거의 다 송화강변의 하얼빈(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흑룡강성)의 성도省都. 쑹화강松花江(연변) 부근에서이며, 하얼빈은 그 옛 이름이 부여扶餘다. 그러므로 송화강은 조선족의 최초에 그 뿌리를 내리고 정주定住를 시작한 ‘아리라’이고, 하얼빈은 조선족이 최초로 개척한 야지野地-‘불’이며, 그 이외의 모든 부여扶餘, 부리夫里 ... 등은 연대를 따라서 차례로 개척된 야지-‘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