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민주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요구되는 세 번째 주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각각의 태도다.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을 기화로 이슬람세계를 민주화하려는, 미국 선교 당국의 노력 탓에 이슬람주의는 민주주의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후, 미국은 민주주의를 장려한다는 미명하에 사담의 숙적이자 유력한 이슬람주의 야당과 손을 잡아야 했다. 따라서 제도적 이슬람주의자와 지하디스트의 차이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관계가 깊었다. 오바마 정부는 이를 “온건파 무슬림” 과 익명의 “테러리스트” 의 차이로 규정해 전자와의 비즈니스를
정당화했고 고위 관료에 온건파 무슬림을 대거 앉혔다. 알다시피, 부시 행정부 당시 지하디스트는 “테러와의 전쟁” 에서 적으로 규정되었으나, 오바마 정부는 무슬림과의 화친정책을 비롯하여, 그들을 “급진파” 와 구별하기 위해서 이슬람주의와 지하디스트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는 정책은 각기 달랐으나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제도적 이슬람주의자와 지하디스트는 권력을 쟁취하는 수단이 다를 뿐, 비전과 세계관을 비롯하여 샤리아에 기초한 국가를 건설한다는 궁극적인 목표와 관련된 정부 현안을 두고는 견해가 일치했다. 그렇다면 마음에 품고 있는 질서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양립할 수 있을까? 그 답변을 2장과 4장에서 분명히 제시해두었으므로 지금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차이와, 이슬람교와 민주주의의 양립 가능성 두 가
지만 짚어볼까 한다. 이슬람교가 정치적 윤리의 원천으로서 종교개혁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세계에서 잘 조직된 야당을 구성하고 있다. 가자지구와 이라크에서와 같이, 선거가 치러지면 대개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정권을 쥐게 마련이다. 예컨대, 가자지구에서 2006년에 치러진 선거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압승했고, 이듬해 6월에도 결과가 같았다. 그 후 하마스를 탈당한 이들은 재판을 거치지 않은 채 옥고를 치르고 있으며, 설령 차기 선거가 실시된들 그것이 공명정대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실정이다.
제도적 이슬람주의자들은 근대화 자체도 그렇지만 민주주의도 둘로 쪼개어, 선거정책 등의 근대식 수단과 절차는 수용하나 문화적 근대화라는 가치관은 배격한다. 선거 메커니즘의 일환으로 투표함을 받아들이는 건 민주주의를 수단적인 절차로 믿는다는 방증인데, 정작 민주적 다원주의나 권력분립 등, 민주주의의 주요 사상에는 공감할 줄 모른다. 또한 정치철학과 민주주의의 시민 문화는 서방세계의 전유물로 보고 이슬람교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이런데도 민주화가 성공할 수 있을까?
겉으로 보이는 절차를 차치하고도 이슬람주의자들이 민주적 절차에 집착하는 데는 의문이 든다. 당사자가 폭력을 버리고 민주주의라는 핵심 가치관과 절차에 동의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제도적 이슬람주의자와 지하디스트의 차이는 전자가 폭력을 포기하고 민간체제의 규율을 엄격히 준수할 때에만 성립된다. 하지만 지금은 소위 “온건파” 라는 이슬람주의 조직도 강경한 민병대를 거느린 채 투표게임을 즐기고 있으니 그 차이는 별 의미가 없을 만큼 흐릿해진 실정이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 이슬람 최고평의회SIIC: Supreme Islamic Iraqi Council 및 마흐디운동은 모두 국회에서 정당노릇을 하고 있으나 민병대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즉 투표를 실시하고 원로를 국회로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해체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 민병조직을 이용하여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 어찌 투표함과 총알의 결합이 민주주의와 손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알기로는 민병대를 갖추지 않은 이슬람주의 조직은 터키의 AKP뿐이다. 하지만— 2008년 7월, 터키 헌법재판소에서— 검찰은 AKP가 자국을 “점진적으로 이슬람국가” 로 만들고 있다는 혐의를 주장했다. 마침내, 법정은 당에 유죄를 판결했으나 국가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해체를 명령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2010년 들어 AKP는 헌법재판소와 사법당국을 당리에 유리하게 재편하기 위해 헌법 개정초안을 작성했다.37 즉 종교색을 띠지 않는 터키를 이슬람화하려는 당의 움직임이 좀 더 분명해진 것이다. 그런데 AKP의 이슬람주의38는 다양한 측면에서 예외적인 사례라서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이슬람교 조직체도 정치에 참여해야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의 주요 근거가 되므로 논의할 가치가 있다. 민주주의는 투표함이나 투표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민주적인 정치 문화라는 가치가 우선 확립되어야만 한다. 터키가 심심찮게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법절차를 무시한 채 정적을 구속하고 있다는 것 외에도, AKP가 민주정치에 헌신한다는 주장을 믿을 수 없는 근거는 아주 많다. 그것이 바로 제도적 이슬람주의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지금은 이슬람주의 정당이 종교와 무관한 공화국에 적응한다기보다는 그 반대라야 옳을 것이다. AKP가 집권한 이후 한때 이슬람세계에서 종교와는 무관한 민주정치의 모범이 되었던 케말리스트 공화국이 종교적 정체성을 찾고 서양 문화를 탈피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울러 AKP가 집권한 터키가 이란과 하마스 및 헤즈볼라와 가까워지고 있으니 서방세계와는 점차 멀어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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