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과 시 이용하기

나는 명상에서 낱말을 사용하는 것(보통 유도 명상법이라고 부른다)이 목발에 의지하는 것처럼 불완전한 방법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경Ānāpānasati』과 같은 경전을 공부하면서 붓다도 이러한 방법을 추천했음을 알게 되었다. 무아와 무상의 통찰이 기존의 개념을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각하는 방식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려는 의도인 것처럼 고요함에 이르는 데 낱말을 사용할 수 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에는 혼란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 할 일을 주고 방향을 제시하여 산만한 마음을 모두 잡는 것이 현명할 때가 많다.
많은 종교에서 깊은 명상에 이르는 비결로 낱말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즉 ‘거룩한 독서’라는 수행법이 전해온다. 이 수행법은 무엇인가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생길 때까지 성경의 한 구절을 읽는 것이다. 그 구절은 ‘여호와는 나의 빛’처럼 시편(27:1)의 한 구절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이 마음을 끌었다면 그 부분이나 전체 구절을 생각하면서 마음속의 긍정적인 씨앗에 물을 주는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빛, 나의 빛, 빛’이라는 구절이 마음을 적시고 가득 채우게 한다.
불교에서는 시詩가 수행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게구偈句(gathas)라 부르는 짧은 시가 주의를 집중하기 위해 사용되는데, 단순히 시의 구절을 생각하면서 심호흡을 하는 방법이나 시의 한 구절에 숨을 들이마시고 다음 구절에 숨을 내쉬는 방법이 이용될 수 있다. 다음 게송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경Sutra on the Full Awareness of Breathing』(틱낫한 1996)에 있는 붓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나의 수련법과 통찰에 따라 수정해보았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몸을 의식한다.
몸을 편히 한다.
몸을 사랑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그대로 둔다.
현재의 순간에 행복하게 머무른다.
현재의 순간에 고요히 머무른다.
모든 것이 여기에 이미 있다.
부족함이 없다.
모든 것이 여기에 이미 있다.
이 글을 써서 명상할 때 앞에 두어도 좋을 것이다. 각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자.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어라 이 시로 수행할 때에는 호흡에 집중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들숨이 몸과 마음을 상쾌하게 하고, 날숨이 긴장과 근심을 내보내도록 하라. 호흡의 감각을 즐겨라. 숨을 들이마실 때에는 ‘들이쉰다’라고, 내쉴 때에는 ‘내쉰다’ 하고 속으로 말하라. 마음이 차분해지거나 이런 말이 거북해지면 그냥 조용히 심호흡에만 집중하라. 원하는 만큼 이 상태를 유지하고 또 나쁘지 않다면 명상 내내 이렇게 해도 좋다. 명상으로 우리가 어떤 경지에 도달하거나 무엇인가를 성취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게구의 어떤 부분을 사용해도 좋다.
몸을 의식하라 심호흡을 계속 의식하면서 그 의식을 몸 전체로 확대하라. 몸 전체가 느끼는 감각을 알아보고 이 순간 몸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주목하라. 우리의 몸 어느 부분에서 고통이나 긴장이 느껴진다면 그 사실에 주목하라. 몸이 편안하다면 그냥 그 사실을 알아두어라. 호흡 한 번에 한 구절씩 속으로 읊다가 점차 호흡 두세 번에 한 번으로 줄이고 나중에는 그저 고요히 몸에만 주의를 기울여라. 주의가 산만해지면 구절을 다시 읊어라.
몸을 편히 하라 몸이 좀 편해지기 시작하면 이 구절을 사용해보라. 이 구절은 자기 암시나 자기 최면이 아니라 수행이다. 이는 우리가 몸을 편안히 해서 의식을 피해가려는 시도가 아니라 의식을 적극적으로 발휘하여 몸을 편안하게 만드는 걸 의미한다. 이미 생겨난 편안함의 씨앗에 물을 주는 일일 뿐이다. 이미 있는 편안함에 주의를 기울이면 편안함은 더 커지고 깊어진다. 그러면 낱말을 더 이상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집중력이 떨어질 경우 이 구절을 다시 이용하라.
몸을 사랑하라 몸에 주의를 기울이는 행동 자체가 이미 일종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몸을 편하게 하면 몸에 대한 사랑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사랑하는 감정을 일으켜 몸으로 불러오라. 몸에 대한 나쁜 생각이 일어나면 그저 알아차리고 그대로 두어라. 그리고 다시 우주의 경이로운 발현이자 멋진 선물인 몸에 대한 사랑을 불러오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대로 두라 근심이 생기면 내려놓고 그것을 그대로 두려는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상기시켜라. 이는 근심과 다툼을 벌이거나 떨쳐버리려는 노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근심에 얽매이지 않고 그 본질을 의식 속에서 변화하는 하나의 에너지 유형으로 바라보면서 그대로 내버려둔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이 구절을 읊을 때 공양 그릇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붓다의 이미지, 평화롭게 받아들이는 열려 있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도움이 된다.
현재의 순간에 행복하게 거하라 걱정거리가 생기면 그것을 우리에게서 떨어져나가도록 하고 이 순간 우리 속에 그리고 우리의 주변에 있는 좋은 것들만을 받아들여라. 이렇게 하면서 우리는 구절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현재의 이 순간에 행복하게 거한다, 행복하게 거한다, 행복…….’ 편안해지면 우리가 이 구절을 사용할 필요 없이 조용히 명상하면 된다.
현재의 순간에 침착하게 거하라 이제 이미 현존하는 침착함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이 증가하도록 내버려둔다. 우리가 원한다면, 같은 종류의 다른 낱말들을 추가하여 사용할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고요’, ‘조화’, ‘광휘’ 등을 사용할 수 있다. 동일한 종류의 추가하고 싶은 다른 글귀가 있다면 사용해도 좋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현재의 고요, 조화, 광휘 속에 거한다…….’
모든 것이 이미 여기에 있다 실재를 조각내어 인식하는 것이 지성의 본성이다. 영적 가르침의 실질적 이유로 인해서 우리는 나눌 수 없는 실재를 다른 관점들로 나누어야만 하고, 궁극의 것(法界)과 상대적인 것이나 역사적인 것(世界)을, 경이적인 것과 본체를 구별한다. “모든 것은 여기에 이미 있다”라는 표현은 상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궁극적인 진리다. 상대적인 차원에서 보면 부족한 것,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것, 우리가 손에 넣어야만 하는 것들이 많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인 차원, 즉 천국이나 붓다의 정토의 차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여기에 있으며 부족한 것이란 없다. 한 가지와 깊이 접촉하면 만물과 접촉하는 셈이다. 이 구절은 우리가 궁극적인 차원에 닿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러나 우리가 이 구절을 인정하지 못하거나 부족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더라도 그 생각과 다투지 마라. 이 시의 첫 구절부터 다시 시작해도 좋으며, 언제라도 이 구절로 다시 수행할 수 있다.
부족함이 없다 모든 것이 이미 여기에 있다. 이 구절은 완전함과 풍만함의 통찰을 표현한다.
● ● 누워서 명상하기
누워서 명상하면 무엇보다 편안하다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