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귀신을 속인 음식을 먹었습니다
어제 아침 지인으로부터 재래식 만두를 빚고 있으니 와서 먹고 가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만두를 좋아하는데다 재래식으로 빚었다니 참새에게 방앗간을 열어놓겠다는 말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 소식이었습니다. 오라는 시각보다 30분 일찍 개포동으로 향했습니다. 자기는 미리 만두를 빚지 않고 먹기 바로 전에 빚는다면서 만두가 큰데 몇 개를 먹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잠시 생각했습니다. 몇 개를 먹을 수 있을까! 여덟 개라고 했습니다. 떡국은 조금만 넣어도 된다고 했습니다. 만두피를 직접 만드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고 결국 아홉 개를 먹으니 위가 다 찬 것 같았습니다. 후식으로 한라봉, 식혜, 다양한 차 몸무게를 2kg 늘여서 밤늦게 귀가했습니다.
만두를 귀신을 속인 음식이라고 한 것은 만두와 관련하여 전하는 말이 재미있어서 붙인 제목입니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 겸 전략가 제갈량諸葛亮이 남만南蠻을 정벌하고 회군하면서 노수라는 강가에 이르렀을 때, 그의 군사들이 강을 막 건너려는 참인데 홀연 일진광풍이 닥쳐 사람은 물론 말과 수레까지도 날려버렸다고 합니다. 대낮에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데다 큰비가 내려 강물이 순식간에 불어나는 바람에 군마는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차에 현지사정에 밝은 남만인 하나가 공명에게 아뢰기를 거듭된 전란으로 숱한 인명이 죽어갔으니 하늘이 노한 것이라며, 사람의 머리를 바쳐 진노한 하늘을 달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합니다. 승전고를 울리면서 회군하는 길에 또다시 부하들의 목을 바쳐 희생을 더한다면 이는 군사軍師가 할 노릇이 아니라고 생각한 제갈량은 생각한 끝에 묘안을 내놓았습니다. 사람의 고기 대신 양이나 돼지고기를 소로 넣어 밀가루 반죽에 싸되, 사람의 머리모양으로 빚어 제사를 지내라고 했습니다. 만두饅頭에서 두頭는 머리모양을 가리키고 만饅은 기만欺瞞하다의 瞞과 같은 음에서 따온 것입니다. 만두는 귀신을 속여먹은 음식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만두가 들어온 건 고려 시대였으며 상화로 발효시킨 찐빵과 비슷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상화는 가루에 술을 넣어 부풀린 반죽을 찐 것으로 중국의 만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고려사>에는 충혜왕 때 궁 주방에 들어가 만두를 훔쳐 먹은 자를 처벌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우리의 만두가 처음 기록된 것은 <영접도감의궤>(1643)로 중국 사신들을 대접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었으며, 그 후 궁중의 잔치에도 종종 차렸다고 합니다. 궁중잔치 기록에는 생치만두, 골만두, 생복만두, 진계만두, 생합만두 등이 나옵니다. <이순록>에는 "인조가 전복만두를 좋아했는데 생신날에 왕자가 비와 함께 동궁에서 직접 만두를 빚고 새벽에 문안을 올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800년대에는 만두소를 녹말에 묻혀 데친 후 초간장에 찍어 먹었고, 병시를 먹었다고 하는데, 장국에 넣어 끓인 만둣국을 말합니다.
만두의 유래가 이러하므로 제사상에 만두를 올렸다가는 조상이 크게 진노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려서 신김치에 두부 소고기 갈은 것 등을 넣고 주전자 뚜껑으로 찍어낸 만두피에 쌓던 일이 생각납니다. 만둣국을 먹을 때마다 몇 개를 먹어야 할까 궁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늘 양보다 하나나 둘을 더 먹게 됩니다.
어제는 귀신을 속인 음식을 두둑하게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