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나라에 안창호라는 좋은 지도자가 있으니”

 

 

1927년 1월 길림에 도착한 안창호는 독립 운동가들을 만나 유일당 결성의 당위성을 주지시키고 1월 27일에 길림성 조양문朝陽門 밖 대동공창大同工廠에서 의사 나석주羅錫疇의 추도회 겸 독립 운동 지도자들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조선독립 운동의 과거와 현재’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습니다. 이때 들이닥친 중국 경찰에 체포되어 20여 일 만에 풀려난 이른바 길림대검거사건吉林大檢擧事件을 겪었습니다. 집회를 사전에 탐지한 일본 경찰이 중국 헌병사령관 양위팅揚宇霆에게 한국의 공산당이 불법집회를 하고 있으니 붙잡아 일본에 인도해줄 것을 요구했고, 이 말을 곧이들은 양위팅은 길림독군서吉林督軍署에 명하여 한국인을 잡을 것을 지시했습니다. 길림독군서는 헌병과 경찰 수백 명을 동원하여 길림성내 한국인 가옥을 수색하는 한편, 집회장을 포위하고 안창호를 비롯하여 300여 명을 잡아 경찰서에 투옥시켰습니다. 그 뒤 수감된 한국인 중 독립 운동자 50여 명을 고른 뒤 나머지는 석방했습니다. 일본당국은 50여 명을 일본 경찰로 인계해주도록 중국 당국에 강요했지만, 중국이 거부함으로써 중일간에 외교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중국 신문에 보도됨으로써 국제적으로 여론화되었습니다.

20일 만에 석방된 후에도 안창호는 만주 각지를 순회하며 대동단결을 호소했으며, 4월 1일에는 길림의 교민들과 함께 농민호조사를 결성하는 한편 정의부, 신민부, 국민부 3부 대표들이 모인 이른바 ‘신안돈회의’에 직접 참여하여 만주지역 유일당 조직 결성을 위한 준비모임을 주도했습니다. 불굴의 의지와 정력으로 민족통합과 대동단결을 주선해나간 안창호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북경에 이어 상해, 광동, 무한, 남경 등지에 차례로 한국독립당촉성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중국인에게 구축당하는 비참한 한인들의 실정을 돌아본 안창호는 1928년에 들어와 중국인과 항일협력전선을 결성해 공동투쟁 할 것을 역설했으며 아울러 자신의 대공주의大公主義 사상을 정립해나갔습니다.

안창호는 어디에 있으나 그렇지만은 북경에 체류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늙은이도 있고 젊은이도 있었으나 젊은이가 더 많았습니다. 그는 누가 찾아오거나 만나보고, 만나면 온화하고 공손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접대했습니다. 찾아온 사람이 무슨 문제로 가르침을 청하기 전까지 안창호는 결코 훈계하거나 충고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어리석은 말이라도 끝까지 다 들었으며, 남이 말하는 중에 꺾는 일이 없었습니다. 안창호는 모든 사람의 개성을 존중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 핀잔을 주는 일이 없었습니다. 비록 어린 사람이라도 하고자 하는 말을 다 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는 남이 하는 말을 다 들은 뒤에 자신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대는 성의를 다하여 진실한 의견을 말했고 조금도 저편의 뜻을 받아들여 비위를 맞추는 일은 없었습니다. 안 될 일은 안 된다고 하고 안 믿는 말은 안 믿는다고 바로 말했습니다. ‘글쎄’ 같은 어름어름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말을 안창호는 사용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의 말은 늘 분명하게 긍정이거나 부정이었습니다.

이광수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도산을 찾아왔던 사람은 반드시 무엇을 얻어가지고 갔다. 충고도 훈계도 없었건만 회화 중에 언제인 줄 모르게 듣는 자에게 무슨 소득을 주어서, 한번 도산을 만나고 나면 뒤에 잊히지 아니하는 무엇이 남았다. 그것은 그의 모든 말이 정확한 지식과 움직이지 않는 신념과 또 한마디 한마디가 애국 애인의 진정에서 나오는 까닭이었다.

 

천진 남개대학 총장 장백령張伯岺은 안창호와 회견한 뒤 조선 사람을 만나면 “그대의 나라에 안창호라는 좋은 지도자가 있으니 부럽다”고 안창호의 인격과 식견을 찬양했습니다.

북경에 체류할 때 모씨가 안창호를 위해 거액을 구해주마고 말했습니다. 모씨는 안창호를 매우 숭배했으며 그에게 자금만 있으면 나라 일이 잘 될 것으로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씨는 수단이 놀라워서 몇 만, 몇 십만의 돈을 수월하게 만드는 위인이었습니다. 안창호는 그가 정당한 일을 하는 인물이 아니라 일종의 협잡꾼인 줄 알기 때문에 그에게 “나라 일은 신성한 일이오. 신성한 일을 신성치 못한 재물이나 수단으로 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오” 하고 말했습니다.

안창호는 재물의 출처를 적실히 알기 전에는 그 재물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가 레닌 정부의 돈을 받기를 반대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독립 운동 당시에도 안창호가 부자를 협박하거나 꾀어서 돈을 내게 하는 일을 끝내 반대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안창호의 신념에 의하면 민족 운동을 하는 자가 도덕적으로 시비를 들어서는 안 되고, 동포가 백만 대금을 의심 없이 맡길 만하고 과년한 처녀를 안심하고 의탁시킬 인물이라야 비로소 동포의 신임을 받고 또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