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호는 누구인가?

 

 

 

안창호는 누구인가? 하고 묻는다면 과연 몇 사람이 그에 관해서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요? 그는 애국지사, 웅변가, 교육자, 신민회, 청년학우회, 재미 대한인국민회, 흥사단, 상해 임시정부의 주요 인물, 수양동우회사건으로 옥사하신 분, 이 정도가 전부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그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의 사상일 것입니다. 무실역행務實力行과 충의용감忠義勇敢을 그의 사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의 사상을 알기에는 자료가 충분치 않습니다.

우선 안창호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한 점의 비난을 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길준처럼 잠시 친일 행각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도 있고, 이광수처럼 열심히 안창호를 도와 독립 운동에 이바지하다가 친일로 돌아선 사람도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초지일관初志一貫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도 적잖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생에 한 점의 오점도 남기지 않고 살았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60 평생에 누구를 속인 일이 없고, 누구에게라도 야속하게 언행하거나 부정한 행위를 한 적이 없는 사람이 안창호입니다. 그를 접한 사람은 모두 그에게서 사랑과 우정을 느꼈습니다. 생전에 그를 원망하거나 비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현인이요 군자였습니다. 그의 인격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몸소 표면에 나서 지도자의 칭호를 받아들이지 않은 데서 발견됩니다. 미국 내 국민회를 설립하고서도 최초의 회장이 되지 않았고, 합병 전 본국에 돌아와 신민회와 청년학우회를 설립하고서도 자신은 이면에서 활동했으며, 대성학교를 설립하고서도 교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상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이유는 일제 강점기에 언론의 자유가 없었으므로 그의 사상이 사람들에게 널리 전해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연설을 많이 하고 친지들과 담화를 많이 했다지만 그의 사상의 편린을 드러냈을 뿐입니다. 더욱이 그의 말이 듣는 이들의 마음에 박혔더라도 기록으로 남지 않아 우리는 그의 사상을 아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의 서간이나 설화를 필기해두는 것이 매우 위험했던 시대였으므로 그의 사상이 글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안창호는 속이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대성학교 학생 하나가 그의 결석 이유서에 다른 사람의 도장을 찍고 손가락으로 비벼서 글자의 획을 불분명하게 하여 자신의 도장인 것처럼 속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교직원 전체의 반대로 물리치며 안창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성학교는 속이는 학생을 용납할 수 없소. 원컨대 우리나라가 속이는 한, 국민이 용납하지 아니할 날이 오게 하고 싶소.” 그는 그 학생을 출학 처분했습니다.

안창호는 민족의 각원이 서로 믿게 되는 날이 우리나라의 독립이 완성되는 때이며, 세계 모든 나라가 우리 민족의 일언일동一言動을 참이라고 믿게 되는 날이 우리가 세계개조世界改造에 공헌하는 때이며, 세계 각국과 각 민족이 서로 속이지 아니하고 서로 믿게 되는 날이 세계에 참되고 오래 갈 화평이 오는 때라고 말했습니다.

안창호를 만난 사람은 그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생애를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행합일은 참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식은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독서를 통해 엄청난 양의 지식을 습득합니다. 그러나 실행이 따르지 않으면 그 지식은 사회에서는 무용지물無用之物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책에 있는 지식이 실체의 그림자라면 안창호의 지식은 실체 그 자체였습니다. 행동하는 지식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식인이 그의 말을 들으면 그들도 책에서 학교에서 이미 배운 것에 불과하지만, 마치 금시초문今時初聞인 듯한 인상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의 말에는 행동이 뒤따르는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으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굳은 신념과 결심을 하게 디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행동에 나서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지성으로 터득한 지식을 지성으로 설복하는 곳에 그의 웅변이 있었고 감화력이 있었습니다.

현인으로서 그리고 군자로서의 안창호의 인격은 끊임없는 노력과 수양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그와 30년 혹은 40년을 함께 단체에서 활동한 사람들은 그가 성낸 기색을 보았거나 크게 웃거나 근심에 잠긴 것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품성이나 지식, 도덕 따위를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수양修養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안창호는 수양의 규범이었습니다. 이광수는 안창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신병이나 피로로 심신이 여상如常(한결같음)치 못함을 자각할 때에는 사람 대하기를 피하였고, 부득이 접견하도라도 한훤寒喧(춥고 더움을 말하여 서로 인사함) 한담뿐이지 책임 있는 말을 아니하였다. 그는 연설을 하거나 회의에 임석하거나 의견을 토로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자기 의견에 스스로 반대도 하여보고 찬성도 하여보고 또 보첨補添(깁고 덧붙임)도 절충도 하여보아서 그야말로 천사만려千思萬慮(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걱정함), 좌사우탁左思右度(왼편에서 생각하고 오른편에서 미루어 생각함)으로 그 이상 더할 수 없다는 신념에 도달하기 전에는 발언치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한번 발언된 그의 의견은 아무리 여러 사람이 여러 각도로 반대하더라도 그에게는 언제나 예비한 답변이 있어서 그로 하여금 논적論敵(논쟁이나 논전의 적수)의 미움을 받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의 도덕적 검속檢束에 있어서도 그는 독창적이었다. 그는 성경을 읽었고 유교 경전도 읽어 어디서나 그의 양식을 구하였지마는 어느 한 곳에 기울어지지 아니하였다. 그는 무슨 도덕률이든지 자기의 양심과 이성의 비판을 거쳐서 자기의 도덕률에 편입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기록이 넉넉지 않아 안창호의 사상을 모두 알 길은 없더라도 부분적으로는 그가 한 말에서 발견할 수 있고, 이광수가 전하는 대로 혹은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 그의 인격을 알 수 있습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또 생각한 후에 스스로도 더 이상 나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 그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늘 최선을 다해 말했습니다. 듣는 사람이 감동한 데는 그런 성실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함께 오랫동안 활동한 이광수의 증언을 통해서 다행하게도 그의 인간됨 혹은 인격을 알 수 있게 되었고, 인격의 품위가 어느 정도까지 고양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그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이광수의 안창호의 일거일동一擧一動이 고행 수련의 결과임을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그는 의복, 식사, 거처에 모두 자율적인 규구規矩(지름이나 선의 거리를 재는 도구)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집하는, 이른바 도덕가의 교주고슬膠柱鼓瑟(비파나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놓으면 음조를 바꾸지 못하여 한 가지 소리밖에 내지 못하듯이, 고지식하여 융통성이 전혀 없거나 규칙에 얽매여 변통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도덕이 인생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인생이 도덕을 위하여 있지 아니하다는 것과, 도덕이란 결코 별다른 일이 아니라 개인으로서는 인성人性, 즉 생리적, 심리적 자연에 합하고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는 그 공동체의 약속과 복리에 위반됨이 없다는 것이라고 믿었다. 동시에 그는 도덕이 예의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예의는 각 개인의 반복실행反復實行에 의하는 습관형성력習慣形成力이 아니면 자리 잡힐 수 없는 줄을 알았다. 그는 사람이 도덕으로 행동을 검속檢束함은 사람이 기예技藝를 습득함과 마찬가지어서 학습하는 동안의 괴로움이 있으나 습득된 뒤엔 평안함이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의 일상생활로 하여금 예의 형성의 수련을 쌓았다. 예를 들면 그는 행주좌와行住坐臥(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이 네 가지 동작을 불교에서는 사위의四威儀라 하여 각각 지켜야 할 규칙이나 제약이 정해져 있음을 뜻하며, 평소平素를 이릅니다)에 몸을 단정히 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앉을 때에 허리를 굽히지 아니하고 설 때에 몸을 기대거나 기울이지 아니하고 걸으을 걸을 때에도 팔다리를 일률一律맞춰 놀리고 고개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생리학적으로 좋을뿐더러 심리학적으로도 섭심정심攝心正心(마음을 가다듬어 흩어지지 않게 하고 마음을 곧고 바르게 가짐)의 공효가 있다고 그는 말하였다. 단좌端坐(단정하게 앉음)를 공부하여본 이는 경험이 있으려니와 단좌와 정보正步(바른 걸음)가 함 안 드는 습관이 되기에는 상당한 고행과 세월을 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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