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식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유대인 모략”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저자 바삼 티비는 이슬람주의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세계질서를 두고 벌이는 경쟁입니다. 티비는 이슬람 원리주의 이론과 행동철학을 다듬고 체계화하여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이집트인 사이드 쿠틉Sayyid Qutb(1906~66)이 저서『유대인과의 전투Our Battle against the Jews』를 통해서 이슬람주의자들로 하여금 유대인의 모략에 집착하도록 만들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이슬람 이데올로기화’와 ‘이슬람 혁명’이론의 주창자인 쿠틉은 오늘날 이집트를 비롯한 무슬림 세계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 운동에 있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티비는 쿠틉의 문헌에서 비롯되어 이슬람교에 밴 반유대사상은 한때 범아랍 민족주의가 수용했던 유대인혐오증과 종교색을 띤 기존의 것과는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슬람교의 반유대주의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유대인의 야심이 묻어나도록 날조된 『시온주의 의정서The 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에서 비롯된 사상이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에는 그것이 반미주의와 융합되어 유대인이 뉴욕과 워싱턴에서 세상을 장악하리라는 믿음을 낳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슬람주의가 그리는 이슬람세계의 질서는 “세계의 유대인” 을 위협하고 그들로부터 위협받기도 하는 것처럼 비쳐졌다는 것이 티비의 논지입니다.
티비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유대인을 “세계의 원수” 로 규정하는데, 그 기원을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세계질서를 둘러싼 경쟁의식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5백만~1천만 명에 이르는 회원 수를 가진 세계 최대, 최고最高의 이슬람주의 단체무슬림 형제단Muslim Brothers이 1928년에 창설될 당시만 해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존재하지도 않은 데다 그와 관련된 분쟁도 벌어지지 않았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슬림 형제단은 이슬람교에 대항한 “유대인의 모략” 과 스스로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슬람주의식 유대인혐오증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비롯되었으니 그것이 일단락되면 곧 사그라질 것이라는 견해는 어불성설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의 이슬람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하산 알-반나Hasan al-banna가 영국 식민통치시기인 1928년 '진정한 이슬람 가치의 구현과 확산'을 목표로 수에즈의 이스마일리야에서 설립한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입니다. 티비는 무슬림 형제단의 역사를 감안해볼 때, 정치색을 띤 이슬람교는 중동 분쟁과 관계없이 유대인을 문제 삼아왔지만, 그럼에도 영국령 팔레스타인에서는 팔레스타인・민족주의와 이슬람・보편주의식 반유대사상이 융합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슬람주의자가 남긴 역사 문헌에 따르면,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세계적 대전”은 622년 메디나 정치조직체Medina polity가 창설되었을 때부터 개시된 셈입니다. 쿠틉은 무함마드가 메디나에 초대 “이슬람교 국가” 를 건설했을 때 “유대인들”이 이를 반대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이슬람교가 포위되었다는 인식이 있는데,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를 약 1400년간이나 지속된 전쟁에서 불거진 “모략” 의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아니라 쿠틉과 그의 추종자들이 규정한 “악” 을 처단하는 데 있습니다. 티비는 그것이 반유대주의의 본질이며, 여기에는 공포증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슬람주의가 대량학살 이데올로기로 발전한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근대의 반유대사상은 1905년 초,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아랍 기독교인들이 중동에 퍼뜨린 것인데, 그 이후에는 종교와 무관한 아랍・무슬림 민족주의자들에게까지 확산되었습니다. 유럽의 반유대주의는 전통 이슬람 문화나 종교와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서방세계의 작가 및 전문가들이 전통적인 유대공포증과 근대의 반유대주의를 혼동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가말 압델 나세르 등의 중심인물들이 수용한) 범아랍 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를 혼용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양대 반유대사상이 종교와 무관한 것과 종교색을 띤 것으로 대별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비티의 주장입니다. 그는 유대공포증은 앙심에, 반유대주의는 대량학살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