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지와 사랑)

글쓰기 전에 개요를 작성하라
알다시피 미리 글의 개요를 작성하면 더욱더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다. 논술도 마찬가지다. 설령 글을 쓰는 도중에 바꾸더라도 논술의 전체적인 개요를 미리 설계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 단락의 주제를 중심으로 개략적인 윤곽을 마련하라. 이때 개요를 직접 종이에 적어놓고 논술을 쓰기 시작해야 효과적으로 작성할 수 있고, 나중에 많은 분량을 삭제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논술의 개요를 작성하는 과정 자체가 논술을 설계하는 과정이다. 개요라는 것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단순히 종이에 옮겨 적는 것이 아니다. 작성자가 스스로 개요를 작성하기 시작해야 개요가 생기는 것이다.
글쓰기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글쓰기를 통해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은 단순히 생각을 옮겨 적는 과정이 아니라 어떤 것을 깊이 고민하는 과정이다. 철학 글쓰기는 어떤 주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뒤 거기서 발견한 점을 글로 표현하는 것과는 다르다. 철학 글쓰기 행위는 자신의 사고를 자극하는 과정, 때로는 쟁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거나 개념을 확인하기 위해 책과 노트를 다시 참고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되도록 글쓰기 과제를 미루지 말기 바란다. 글쓰기의 초고를 작성하는 과정 자체가 해당 쟁점을 검토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조사가 더 필요하다며 글쓰기를 미루지 말기 바란다. 다소 막연한 느낌이 들어도 일단 글쓰기를 시작하라.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모른다.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여 원고를 수정하라. 수정과정은 대부분의 경우 최종 결과물의 질을 높인다. 가능하다면 초고를 작성한 뒤 며칠 정도 그냥 내버려두어라.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다른 사람의 글처럼 느껴질 것이고, 어느 부분을 고쳐야 할지 금방 눈에 들어올 것이다.
채점자를 의식하라
리포트나 시험 답안지의 채점자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교수들이 과제를 내주는 건 그들이 철학에 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학생들에게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배우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은 과제를 내주는 기본 목적이 아니다. 논술시험은 학생들이 해당 주제를 얼마나 이해하는지를 보여주고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종합해 논증하는 능력을 입증하는 기회다. 학생들이 제출한 논술답안지나 과제를 노련한 채점자가 검토한다. 하지만 채점자가 해당 주제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채점자가 여러분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해버리면, 답안지에 써넣을 내용이 없어진다. 어차피 채점자가 알고 있는 것이니까 대충 언급하려고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설득력 있게 주장을 제시하라.
주의해야 할 단어들
타당한valid/true : 철학에서 ‘타당한’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어떤 논증의 구조를 묘사할 때 쓰인다. ‘타당한 논증valid argument’은 진리보존적truth preserving 구조를 갖는다. 구체적인 예로 전제들이 참true이면 결론도 참일 것이다. 그런데 여러 전제 중에 하나 이상이 거짓이면, 결론이 참일 수도 있고 참이 아닐 수도 있다. ‘참’이라는 단어는 전제, 주장, 사실, 진술 등과 관련해 쓰인다. 그리고 ‘참인 논증true argument’이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논증에 대해서는 ‘타당한’을 써야 한다. 엄격히 말해 ‘타당한’은 문장이나 진술에 대해 쓰지 말고, 논증에 대해서만 써야 한다.
반박하다/부정하다/부인하다refute/repudiate/deny : 어떤 진술을 반박refute한다는 것은 그것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을 제압하는 주장을 전개하는 것이다. 어떤 진술을 부정repudiate한다는 것은 단지 그것을 부인deny하는 것이다.
모순/대립 contradiction/contrary : 하나의 진술이 다른 진술과 모순contradiction을 이룰 경우에는 둘 다 참이지는 않지만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참이다. 하나는 다른 하나를 부정하는 진술이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런던은 영국의 수도가 아니다”라는 진술은 “런던은 영국의 수도이다”라는 진술과 모순된다. 하지만 두 가지 진술이 서로 대립contrary을 이룰 경우에는 둘 다 참이지는 않지만 둘 다 거짓일 수는 있다. 예를 들어 “고양이는 최고의 애완동물이다”는 “개는 최고의 애완동물이다”와 반대된다. 이 경우 두 진술은 둘 다 참인 것은 아니지만, 둘 다 거짓일 수는 있다. 이를테면 금붕어가 최고의 애완동물일 수 있으니까.
사심 없는/무관심한disinterested/uninterested : 사심 없는 연구는 공평하다. ‘무관심한’이라는 표현은 ‘관심이 없다’라거나 ‘흥미가 없다’라는 뜻이다.
함의하다/추론하다imply/infer : 전제는 결론을 함의한다. 그러나 전제는 아무것도 추론하지 못한다. 오직 사람만이 추론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에서 또 다른 하나를 추론한다.
논점을 회피하다/질문을 요청하다begs the question/invites the question :
‘논점을 회피하다’라는 표현은 지금 다루고 있는 논점을 당연한 사실로 여기는 경우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논증 때문에 논점을 회피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모든 생각에는 그 생각의 주인이 있다는 식의 주장이 바로 지금 논쟁 중인 논점인데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일상회화에서는 ‘논점을 회피하다’라는 표현을 ‘질문을 요청하다invites the question’라는 뜻으로 쓰기도 하지만, 철학에서는 ‘논점을 회피하다’라는 뜻으로만 쓰인다. 예를 들면/즉e.g./i.e.: ‘e.g.’는 사례를 소개할 때 쓰는 표현으로 ‘예를 들면for example’이라는 뜻이다. ‘i.e.’는 ‘즉’이라는 뜻이다. ‘i.e.’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해당 문장의 전반부에 서술된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e.g.) 나는 표절, 즉(i.e.) 다른 누군가의 작품을 자신의 것인 양 행세하려고 속이는 짓을 저지르는 어떤 사람이 어리석고 적발당할 것’이라는 식으로 말할 수 있다.
너무 거창한 단어를 쓰지 마라. ‘매우very’를 의미하는 말로 ‘무한히infinitely’라는 표현을 쓰지 마라. 나중에 정말로 무한한 것에 관해 말할 때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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