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섬을 바라보며

 

 

 

밤섬을 바라볼 때마다 중학교 시절 친구가 헤엄쳐 건너가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수영이 서툴러 하마터면 물귀신 될 뻔했을 때 그 친구가 살렸습니다.

양화대교가 없던 시절의 이야깁니다.

한강에 다리라고는 하나밖에 없었을 때 이야깁니다.

밤알처럼 생겼다고 해서 밤섬栗島이라 부르던 연유도 몰랐던 때 이야깁니다.

그곳에 맑은 모래가 있었다는 건 기억나지만, 율도명사栗島明沙라 하여 마포팔경에서도 으뜸이었다는 건 퍽 후에 알았습니다.

연산군이 즉위한 후 한성부판윤을 거쳐 공조판서, 대제학을 겸임한 성현成俔(1439~1504)이 타계하던 해에 지은 필기잡록류筆記雜錄類에 속하는 <용재총화慵齋叢話>는 고려로부터 조선 성종대에 이르기까지 형성, 변화된 민간 풍속이나 문물 제도·문화·역사·지리·학문·종교·문학·음악·서화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다룬 책입니다.

<용재총화>는 한양 명승지와 그 밖에 성 밖의 명승지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밤섬栗島에 관해 조선초기부터 뽕나무를 심어 잠업이 성행한 지역이었고, 서울장안에 뽕잎 값이 비쌌을 때 이 섬에서 뽕을 공급했다고 했습니다.

밤섬에 관한 풍습이 명종실록 명종 11년(1556년) 4월 조條에 기록되어 있는데 섬 주민의 생활방식이 문란한 것으로 비쳐져있습니다.

이는 외부와 교통이 제한되어 남의 이목을 덜 의식했기 때문에 문란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밤섬은 두 토막으로 윗밤섬과 아랫밤섬으로 불립니다.

두 토막이 난 것은 1968년 2월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한강의 흐름을 좋게 하고 여의도제방을 쌓는 데 필요한 잡석 채취를 위해 밤섬을 폭파·해체했기 때문입니다.

밤섬의 대부분이 그때 사라졌습니다.

그 후 한강 퇴적물이 쌓이면서 나무와 풀이 우거지기 시작했고 새들이 모이면서 도심 속의 철새도래지가 되었습니다.

율도명사栗島明沙로 마포팔경에 속하고, 뽕나무로 잠업이 성행하고, 섬 주민의 생활방식이 문란한 것으로 소문났던 밤섬은 개발이란 미명 하에 몸체 대부분을 잃고 두 토막이 났습니다.

강을 개발한다는 강의 원래 모습을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일입니다.

다행히도 밤섬에 사람들을 거주하지 못하게 했으므로 밤섬은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여 철새도래지로 새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연自然을 보호한다는 것은 사람이 손을 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을 때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자연自然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아름다운 것만큼 아름답게 꾸밀 수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도 자연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밤섬을 바라보며 중학교 시절 친구가 헤엄쳐 건너가던 모습을 머리에 떠올려봅니다.

맑은 모래가 펄쳐진 모습을 그려봅니다.

뽕나무가 무성한 모습을 그려봅니다.

섬 주민들이 밥 짓고 빨래하던 모습을 그려봅니다.

밤섬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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