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아래 강변북로와 서강대교가 보입니다
13년가량을 단독주택에서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마당이 있어 흙을 바라보며 살다가 공중누각에서 살려고 하니 적응이 될까 은근히 염려했습니다.
밤섬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를 보고선 당장 결정했습니다.
살던 곳에서 걸어갈 만큼 가까운 곳이라서 낯설지 않은 것도 결정하는데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평소에 나무가 바라보이는 층이 적합하다는 의견을 가졌던 것과는 달리 24층을 선택했습니다.
전망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이사는 작년 12월 10일이었습니다.
발아래 강변북로와 서강대교가 보입니다.
도시의 혈관이라 할 수 있는 달리는 자동차를 늘 바라보면서 도시의 활력을 느낍니다.
사람들이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흙을 밟고 위로 바라만 보던 눈을 공중에서 이리저리 날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눈에 대한 새로운 느낌이 생겼고, 앞집 옆집 건너집을 적시는 비를 바라보다가 강남 저 멀리에까지 비에 젖는 것을 바라보니 2차원의 집에서 3차원의 집으로 옮겨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3차원은 입체라는 걸 새삼 알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이곳 단지에는 카메라가 모두 125대가 설치되어 있다는 걸 입주 등록하러 갔다가 알았습니다.
누구라도 단지 내에 들어서면 125대 카메라의 감시의 대상이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범죄 예방이 목적이겠지만,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1975)이 생각났습니다.
감시의 방법과 처벌의 종류를 파헤쳐서 감옥의 탄생에서 정점을 이룬 책입니다.
역사적으로 감옥과 처벌의 내적, 외적 변화가 사법제도와 권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가 푸코의 저작 의도였습니다.
구조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 철학자 푸코는 사회에 무의식적 문화의 체계가 있다는 걸 깨닫고 정신병원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인간적 장치가 아니라 이성중심적 사회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가치기준으로 광인을 추방하고 감금해온 장소로서 인간에 대한 권력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억압적 수단의 필연적 산물로 보았습니다.
푸코는 <광기狂氣와 비이성非理性―고전시대에서의 광기의 역사>(1961)로 이미 유명해졌는데, 광기를 이성 중심의 서구 문화가 포용하지 않고 배척한 인간적 특성임을 알고 중세시대부터 19세기까지 감금된 광기에 대해 방대한 자료의 추적을 통해 그 개념 형성과 변화 과정을 밝혔습니다.
그가 언급하는 광기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정신분열증을 앓는 사람을 말한 것이 아니라 멀쩡하지만 권력자가 사회에 그냥 방치해두는 것이 사회에 해롭다는 주관적인 판단으로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그런 존재입니다.
게으른 사람, 부랑자, 걸인 등이 광기의 소유자로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권력이 어떻게 사악하게 사용되었는지를 더불어 알게 해줍니다.
푸코의 자료 수집은 방해합니다.
그는 수많을 구슬들을 수집하여 목걸이를 만들어 우리의 목에 걸어주었습니다.
매우 놀랍고 치를 떨게 만드는 그런 목걸이입니다.
125대 카메라의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고 해서 제가 처벌이 두려워서 떨고 있는 건 아닙니다.
광기狂氣로 말하면 없는 편이 아니지만 진보한 사회에서 사는 행운으로 사회에서 배척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믿고 안심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문명사회가 감시 아래 건설된다는 것이 매우 비문명적이라는 생각으로 푸코가 잠시 머리에 떠오른 것뿐입니다.
이상적인 사회라면 감시도 필요 없는 자율적인 사회입니다.
해라 하지마라 하는 규율보다 칸트가 말한 하늘의 별빛처럼 반짝이는 마음속의 도덕률이 더 빛을 발하는 사회일 것입니다.
카메라는 이 아파트 단지에만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는 곳 어디에도 우리는 카메라 앞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전철을 갈아탈 때에도, 건물 속으로 들어갈 때에도, 쓰레기를 버릴 때에도, 버스 안에서도, 택시 안에서도, 골목길을 걸을 때에도, 심지어 사우나 안에서도 우리는 카메라의 감시를 받고 있습니다.
도로 전체가 블랙박스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런 감시체제 안에서도 범죄는 늘 발생합니다.
다시금 이상적인 사회가 자율적인 사회라고 생각됩니다.
전망 좋은 아파트로 이주한 후 125대 카메라가 감시하는 단지 내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푸코가 머리에 떠올라 이상적인 사회 운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내 책상은 창문 바로 옆에 있습니다.
아무래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서 발아래 강변북로와 서강대교를 달리는 차들을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특유의 차량 색깔은 흰색과 연한 회색입니다.
그리고 검정색이 유난히 많은 것도 특징입니다.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가 126번째의 카메라가 되어 열심히 도로를 감시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도 수많은 차들이 나의 카메라의 감시 아래 남쪽으로 북쪽으로 그리고 여의도쪽으로 달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