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지와 사랑)

질문을 하라
철학은 질문을 하더라도 해답을 결코 얻지 못하는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이 말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인식할 때 철학에서 발전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철학에는 해답이 없다는 생각에도 어느 정도의 진실은 담겨 있다. 철학의 뿌리는 인간조건에서 자연스레 제기되는 난해하고 근원적인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 “실재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이런 질문들은 쉽게 대답할 수 없으며, 정답이란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들을 탐구하는 것이 시간낭비라는 말은 아니다.
사실 철학의 가치는 특유의 불확실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철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은 상식이나 습관적 믿음에서 말미암은 선입견 속에 갇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에게 세상은 명확하고 한정적이고 자명한 것으로 보인다. 익숙한 대상에는 의문을 품지 않고, 낯선 가능성을 거부한다. 이와 반대로 철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일상적인 것도 해답을 알 수 없는 문제로 보인다.
철학은, 비록 우리에게 진정한 해답을 확실하게 알려주지 못하지만, 우리 사고의 폭이 확장되고 우리가 관습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 철학적으로 사고하면 사물의 본질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지만, 사물의 개연성에 관한 지식은 크게 늘어난다. 철학은 의심의 영역을 여행해본 적 없는 자들의 오만한 독단론을 제거하고,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은 측면에서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호기심을 늘 유지시킨다.
어렵고 골치 아픈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학생은 철학을 공부할 자격이 없다. 철학적 토론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황당한 질문도 과감히 던질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가장 간단한 질문이 가장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물론 철학 토론에도 예의가 있다. 그러므로 다른 토론자의 발언기회도 보장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스스로 질문을 고안해 던지지 못하는 학생은 철학을 생생한 학문으로 유지할 수 없으며, 사고의 화석화를 초래하는 수동적인 태도에 안주하고 말 것이다.
질문을 던질 때마다 상대의 답변을 매우 주의 깊게 경청하라.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질문을 던지고 나서 답변을 귀담아듣지 않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상대의 답변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준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의 답변을 통해 자신이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반길 만한 일이다. 그 점을 알지 못하면, 계속 잘못된 생각을 고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필기할 만한 점이 없다고 느끼거나 토론에서 귀담아 들을 점이 전혀 없다는 생각을 지닌 채 세미나실을 나서거나 토론을 마치더라도 당황해하지 말기 바란다. 토론 자체가 바로 생각을 정리하고 오해를 해소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토론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연습을 하고 사고력을 다지는 기회가 되어야만 한다.